돋을볕,

목화솜 톱니 사이로

by 적적

한 여자가 계속 걸음을 멈추며 멈춘 걸음으로 한쪽 무릎을 들어 올리며 몇 채의 무게를 다시 팔로 감싸 안습니다. 그것은 지난해 겨울이거나, 몇 해 전 겨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지난밤의 일이었습니다.

오늘아침 집 근처 헌 옷 수거함 아래 낡고 오래된 솜이불 몇 채가 빨간 보자기에 싸여 놓여있었습니다. 세계지도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누렇게 변한 솜들이 뭉쳐있습니다.


덮고 있으면 자꾸만 잠이 깰 것은 이불은 이미 버려져있고 버린 사람은 이미 새로 산 이불을 펼쳐두고 그 폭신함에 흡족해하며 솜이불을 그 밤에 들고 나왔을 것입니다.


솜틀집 딸내미 선희 누나는 동네 아이들이 다 좋아하던 사람이었어요. 아귀가 틀어진 미닫이문을 끝까지 열면 쥐덫에 잡힌 쥐 소리를 냈었죠 처음 온 사람은 늘 그 소리를 내곤 했어요.


소리 나지 않도록 문을 여는 방법은 문을 중간쯤 밀다가 살짝 들어 올려주고 끝까지 문을 열지 않으면 됐었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틀어 놓았던 라디오를 끄고 선희 누나가 솜 먼지를 손으로 헤치고 옷에 묻은 먼지를 수건으로 털며 환히 웃어주었죠.


밥은 먹었니? 라면 끼려 주까?


라고 묻곤 하였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지난해 겨울 이불은 모두 선희누나 솜틀집에서 생기가 도는 아침햇살처럼 다시 포근해질 수 있었어요. 워낙 솜을 잘 터서 멀리서부터 소문 만으로 솜 트는 일을 주문하러 오곤 했어요


선희 누나 부모님은 아이 셋을 솜틀기계하나로 키웠다고 했어요.


선희 누나가 원하는 건 하나뿐이었어요. 말을 잘하지 못하는 막둥이 선우를 따돌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 우리는 선우와 같이 놀기만 하면 밥 한 끼쯤은 얻어먹을 우정 어린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었죠. 우리는 온종일 선우를 성실히 끌고 다녔어요.


솜을 뭉쳐진 대로 퍼즐처럼 맞춥니다. 서로 맞닿을 수 있도록 가까이 배치하고 굵은 톱니에서 점점 더 가는 톱니로. 솜먼지가 날리고 부풀어 헤어진 연인이 손을 잡듯이 서로를 부드럽게 포옹하듯이 서로의 빈틈까지 닿아 오르죠. 목화 씨앗의 발아처럼 피어나요. 부드러운 힘이 생겨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솜틀집에서 일만 하던 선희 누나가 그랬죠.


이불속에선 편안해야지.... 어디서도 그럴 수 없으니까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꺼지지 않는 가로등불빛 아래 눈썹에 누런 솜먼지를 털어내며 웃는 누나가 떠오릅니다.


눈이 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