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모란이처럼 세수를 하고 산책을 나갑니다. 대단히 심각한 마음도 아니고 상념에 잠겨 발걸음을 옮기거나 하지도 않는 듯합니다. 그저 대기 속의 공기와 서늘함과 다가올 화염의 한낮을 대비해 백신을 맞듯이 걷다가 들어옵니다.
매일 30분씩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유일하게 내게 남아있는 만족스러운 습관이기도 하며 그 시간은 멈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래전 출판사에 다닐 때 일 년에 한 번 가을 즈음이 되면 나라에서 받는 창작 지원금을 썼다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시인들은 새책을 만듭니다. 나는 그렇게 찾아드는 나이 든 시인들을 늙은 여우라고 불렀습니다.
넘겨받은 원고를 밤늦게 까지 수정하거나 조율합니다. 늙은 여우들은 원고에 불만을 표시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배부른 것이 화가 날 정도의 식당에서 나온 음식들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늙은 여우들은 사무실을 둘러보며 믹스커피를 달라고 했었고, 자꾸만 재떨이 밖으로 재를 털곤 하였습니다.
날아오르는 담뱃재는 들어오는 햇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실내를 돌아다닙니다.
책 표지와 책 등 사진을 찍어 자료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음 해에 신청할 기금을 위해 일 년을 보낼 것입니다.
매일 쓰여진 글들의 폴더 이름은 ‘언젠가….’입니다.
판매되지 않는 시집은 전량 출판사로 회수합니다. 시집들은 뿌리 뽑힌 나무처럼 삭아갑니다. 금방이라도 만지면 주저앉거나 먼지처럼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 고목의 숲은 언제든 출판사 1층 구석에 처박혀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리어카에 실려 어딘가를 향해갈 것입니다.
밀렵꾼들은 상아의 출처를 추궁당할 때 코끼리 무덤을 발견해서 주어왔다고 사냥을 한 건 아니라고 하고 상아를 팔아 치웠다고 합니다.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인식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 코끼리는 절대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죽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개체가 보이면 절대 내버려 두지 않고 임종까지 같이 다니면서 지켜준다고 합니다. 죽은 코끼리의 몸에 흙을 뿌려 매장하고 사체가 있는 장소로 반복해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임종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의 무대와 텅 빈 객석과 응원과 좋아요 가 현격히 사라진 글들 앞에 모여드는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쓰는 사람과 쓰였던 사람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록
그 방명록 같은.
오늘
밤의 잔에 남아있던 와인 한 모금을 아침에 마신 것처럼 취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