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밤

사막, 텐트, 그리고 설명되지 않은 둘

by 적적

사막은 언제나 과장된 장소다. 지도 위에서는 비어 있는 면적이지만, 실제로는 너무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낮 동안 태양은 모든 사물을 평면으로 만들어버리고, 밤이 되면 그 평면 위에 차갑고 정확한 입체를 세운다.


겨울밤의 사막은 특히 그렇다. 열을 잃은 모래는 금속처럼 식어 있고, 하늘은 너무 가까워서 손을 뻗으면 별의 가장자리를 긁을 수 있을 것 같다. 텐트는 그 거대한 빈 공간에 임시로 세워진 하나의 문장이다. 바람이 불면 문장이 흔들리고, 모래가 부딪히면 쉼표가 늘어난다. 그 안에 단둘이 있다. 숫자로는 둘이지만, 사막 앞에서는 언제나 과소한 표현이다.



텐트 안의 공기는 낮과 완전히 다른 밀도를 가진다. 숨을 쉬면 공기가 아니라 기억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얇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의 냉기는 끊임없이 안쪽을 시험한다. 지퍼가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기척은 이미 들어와 있다.



텐트 바닥에 깔린 매트는 지면과 몸 사이의 협상이다. 그 위에 놓인 침낭은 임시적인 체온의 국경선이다. 친구는 말이 없다. 말이 없다는 사실이 부재로 느껴지지 않는 드문 순간이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호흡 소리와 옷감이 스치는 소리, 아주 작은 움직임들이 남는다. 그 소리들은 대화보다 오래 지속된다.


사막의 겨울밤은 시간을 단순하게 만든다. 시계는 필요 없고, 휴대전화의 화면은 꺼져 있다. 빛이 줄어들수록 생각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텐트 안에서 친구의 얼굴은 반쯤 어둠에 잠겨 있다. 불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을 켜면 모든 것이 설명되어 버릴 것 같아서다.



어둠 속에서 얼굴은 하나의 표정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잠들기 직전의 무표정 같기도 하다. 친구라는 단어는 이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다른 단어를 불러오면 너무 많은 의미가 붙는다. 그래서 단어는 사용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모래는 낮 동안의 발자국을 밤이 되면 서서히 지운다. 사막에서는 흔적이 남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다. 텐트 밖 어딘가에 낮에 남긴 발자국들이 있을 것이다. 방향 없이 걸었던 흔적들, 목적보다는 시간 소모에 가까웠던 이동. 그 발자국들은 이미 바람에 깎이고 있을 것이다. 텐트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과거에 나눴던 말들, 오해와 농담, 아무렇지 않게 던졌던 문장들이 조용히 마모된다.



친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그 말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남는다. 감정은 증발하고, 대신 그 자리에 흔적만 남는다. 흔적은 감정보다 오래간다.



사막에서는 소리가 멀리 간다. 아주 작은 소리도 예상보다 훨씬 멀리 퍼진다. 텐트 안에서 옷을 여미는 소리, 침낭 안에서 몸을 돌리는 소리, 숨을 고르는 소리들이 밖으로 새어나가 밤과 섞인다. 그 소리들은 어디까지 갈까. 아무도 없는 사막을 가로질러 다른 텐트, 다른 밤, 다른 사람의 귀에 닿을 수 있을까. 친구는 잠들었는지 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눈을 감았다는 사실이 반드시 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깨어 있으면서 눈을 감고 있는 시간도 있다. 그 시간은 대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찾아온다. 혼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이 밀려온다.



추위는 감정을 단순하게 만든다. 추운 곳에서는 복잡한 감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발이 저려온다. 친구는 침낭 속에서 몸을 조금 더 웅크린다. 그 움직임은 의식적이지 않다. 생존에 가까운 반사다.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은 이 상황에서 너무 직접적이다.



대신 같은 속도로 호흡을 맞춘다. 숨이 들고 나는 리듬이 어느 순간 비슷해진다. 그 리듬은 약속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이때의 일치는 감정의 합의라기보다는 물리적인 현상에 가깝다.



사막의 밤하늘은 과도하게 정직하다. 별들은 숨기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다. 텐트 천을 통해 별빛이 아주 희미하게 스며든다. 그 빛은 사물을 비추지 않는다. 다만 사물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친구의 존재도 그렇다.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이 느껴진다. 함께 있다는 사실이 특별한 사건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특별함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사막에서는 과장된 감정이 살아남기 어렵다. 과장된 것은 낮의 태양 아래에서 이미 소진된다.



예전에 친구와 나눴던 대화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말들, 반드시 이해받아야 한다고 믿었던 문장들. 지금 이 텐트 안에서는 그 말들이 굳이 소환되지 않는다. 설명은 필요 없고, 해명은 과잉이다. 친구라는 관계는 종종 말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말이 줄어든 자리에 남는 것은 시간이다. 함께 견딘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 사막의 밤은 그 시간을 확대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바람이 잠시 세게 분다. 텐트가 한 번 크게 흔들린다. 천이 팽팽해졌다가 다시 느슨해진다. 그 짧은 순간,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시험받는다. 그러나 텐트는 무너지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하다. 친구와의 관계도 비슷하다. 완벽하지 않아서 유지된다. 균열이 없었다면 오래전에 부서졌을 것이다. 균열은 바람이 빠져나갈 통로가 된다. 압력을 줄여준다. 그래서 지금 이 텐트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은 완전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잠과 각성의 경계에서 생각은 형태를 잃는다.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친구에 대해 정의하려는 시도도 몇 번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정의는 번번이 중단된다. 정의하려는 순간, 이 장면에서 벗어나게 될 것 같아서다. 사막, 겨울밤, 텐트 안, 단둘이라는 조건은 정의보다 상태에 가깝다. 조건이 충족되면 그 상태가 발생한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이 상태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밤은 깊어지고, 온도는 더 내려간다. 텐트 안의 공기는 더욱 고요해진다. 친구의 호흡이 일정해진다. 잠든 것일 수도 있고, 아주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일 수도 있다.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그 구분은 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사막의 아침은 언제나 명확하다. 그러나 지금은 밤이다. 밤은 모든 것을 유예한다. 판단도, 결론도, 감정의 명명도.



이 텐트 안에서 단둘이 있다는 사실은 어떤 서사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고, 갈등도 없다. 다만 이 상태가 있다. 사막의 겨울밤이 계속되고, 텐트는 아직 서 있고, 친구는 가까이에 있다.



이 상태는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끝난다는 사실이 지금을 불완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막에서는 모든 것이 임시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선명해진다. 텐트 안의 단둘은 그렇게, 결론 없이 유지된다. 감정이라기보다는 흔적처럼.



서서히 식어가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어떤 상태로.

사진 출처> pinterest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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