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할 줄 아는 사람

그 여자의 거짓말을 사랑하게 되었다

by 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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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날, 거짓말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말 사이에 남겨진 공백이 먼저 보였다. 질문에 즉답하지 않고, 잠깐 숨을 고르는 버릇. 그 짧은 지연은 생각의 시간이기보다는 선택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말할지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를 고르는 얼굴이었다. 그때는 그저 신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신중함은 이미 거짓말의 초안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문장의 끝이 항상 조금 내려가 있었고, 단정하지 않았다. 확신을 피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얻는 사람의 화법이었다. “아마도”, “그런 편이야”, “기억에는 그런데.” 그 애매한 부사들이 그녀를 안전하게 만들었다.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말들은 늘 불분명했다. 나는 그 불분명함이 솔직함이라고 착각했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일 수 없다고 믿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감정을 제거한 상태로 서술했다.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사건만 남아 있었다. 이별, 실패, 후회 같은 단어들이 등장했지만, 그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박제된 표본 같았다. 손으로 만질 수는 있지만 체온은 느껴지지 않는 것들. 그녀는 그렇게 과거를 정리해 두었고, 나는 그 정리 상태에 안도했다. 감정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거짓말은 언제나 생활적인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아주 사소한 일정, 별것 아닌 이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선택들 속에서. 그녀는 늦을 때 늘 비슷한 이유를 댔다. 길이 막혔다거나, 생각보다 일이 길어졌다거나. 너무 흔해서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이유들. 나는 그 반복을 신뢰라고 착각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것은, 준비되지 않은 진실보다 더 안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은 말보다 느렸다. 웃음이 약간 늦게 도착했고, 슬픔은 거의 오지 않았다. 감정이 얼굴에 도달하기 전에 한 번 더 검열되는 느낌. 그 검열이 그녀를 성숙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검열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진실처럼 들렸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들을 나열했다. 나는 그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안심했다. 혼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녀가 말한 ‘혼자’는 상태가 아니라, 방패에 가까웠다는 것을.



그녀의 거짓말은 감정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을 바꾸기보다는, 감정의 밀도를 낮추는 방식.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랑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편해”, “괜찮아”, “이 정도면 좋아” 같은 문장들을 사용했다. 감정의 최고점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언어. 그 언어들이 관계를 오래 유지시키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말보다 침묵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옮기는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기다렸다. 그녀가 선택한 문장을 존중한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사실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더 깊이 묻는 순간, 이 관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예감. 그래서 나는 묻지 않는 쪽을 택했고, 그 선택이 우리를 더 오래 함께 있게 만들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분명한 거짓말을 한 날을 기억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그녀의 말이 어긋났던 순간. 아주 명확했다. 실수도 착각도 아닌, 선택된 오류.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했다. 그녀도 결국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정직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상황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의 거짓말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한 것,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 그녀의 거짓말 대부분은 세 번째에 속했다. 관계라는 구조물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임시 지지대 같은 것들. 나는 그 지지대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면서도, 걷는 걸 멈추지 않았다. 흔들림 속에서도 유지되는 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진실은 항상 나중으로 밀렸다. 지금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굳이 지금 알 필요 없는 것들. 우리는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 미래의 폭탄들을 조용히 묻어두는 데 능숙해졌다. 그녀는 그것을 “지혜”라고 불렀고,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지혜와 비겁함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용기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회피라고 부른다.



그녀가 잠든 얼굴을 바라볼 때면, 거짓말은 완전히 사라졌다. 잠은 모든 방어를 무너뜨린다. 그때의 그녀는 어떤 이야기에도 매달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깨어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선택하고, 조정하고, 숨기며 살아가는 걸까. 그리고 그 노동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관계라면, 그것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고.



그 여자의 거짓말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그녀의 결함이 아니라, 그녀의 기술처럼 느껴졌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익힌 생존 방식. 상처를 최소화하고, 관계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기 위한 방법. 나는 그 방식을 이해했고, 이해한 순간부터 더 이상 진실을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하지 않는 사랑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마침내 그녀는 한 번,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은.” 그 두 글자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이 도착하는 순간, 이 관계는 다른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의 이름이 좋았다. 불완전하지만 유지되는 상태.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합의했다. 어떤 진실은 끝내 도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금도 그녀의 말들 중 무엇이 진실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거짓말은 나를 기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하게 했다.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는 선택, 모른 채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선택. 나는 그 선택을 배웠고, 그 배움의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그 여자의 거짓말은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다른 관계, 다른 순간, 다른 표정 속에서. 그러나 그 거짓말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덜 아프기 위해, 조금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나는 그 방향성을 사랑했다.



사랑은 결국 진실의 총합이 아니라, 거짓말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다. 나는 그 여자의 거짓말을 감당할 수 있었고,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조용히 유지되고 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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