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등 위의 짧은..

며칠 동안만 존재하는 식물성 문장

by 적적


손등 위로 번져 가는 갈색의 식물성 잉크.



맨디(Mehndi)는 처음에는 장식처럼 보인다. 축제의 저녁이나 결혼식 전날 밤, 혹은 이유 없이 따뜻해진 어느 날, 누군가의 손끝이 다른 누군가의 피부 위에 남기는 느린 선들.


그것은 장식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미묘한 어긋남이 있다. 맨디의 선은 장식이라기보다 잠깐 머물기 위해 도착한 문장에 가깝다. 오래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머무르는 동안은 분명한 문장이 되는 어떤 것.


처음 페이스트가 피부에 닿는 순간은 거의 냉기에 가깝다. 잎사귀, 덩굴, 작은 별,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곡선들이 손가락 사이를 따라 흐른다. 그때 손은 더 이상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잠시 빌려준 종이처럼 보인다.



피부는 종종 글을 쓰기에는 너무 살아 있는 표면이지만, 바로 그 살아 있음 때문에 잉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종이는 기억하지 않지만 피부는 기억한다. 그래서 같은 선도 종이 위의 선과는 다른 종류의 문장이 된다.


막 그려진 문양은 연하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다. 그러나 그 희미함이야말로 시작의 상태다. 어떤 문장도 처음부터 또렷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문장은 보이지 않는 상태로 먼저 놓인다. 시간이 그것을 읽기 시작하면 그제야 색이 짙어진다. 맨디는 그 과정을 노출시키는 드문 문장이다. 시간이 잉크를 완성하는 방식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밤이 지나면 선들이 조금 더 또렷해진다. 낮의 빛 아래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오래된 지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지도에는 목적지가 없다. 길만 있고 방향이 없다. 어떤 선은 다른 선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멈추고, 어떤 선은 이유 없이 돌아간다. 지도라기보다는 길을 잃은 지도의 초안에 가깝다.



맨디를 바라보는 일은 읽기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그 읽기는 해석이라기보다는 더 느슨한 종류의 관찰이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굳이 확정할 필요는 없다. 선들은 서로를 따라가며 잠깐의 질서를 만든다. 그 질서는 곧 흐트러진다.



손을 씻을 때마다 문양은 조금씩 흐려진다. 물은 잉크를 천천히 데려간다. 그러나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어떤 상태들은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남아 있고, 존재한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흐려져 있다. 맨디는 바로 그 사이에 머문다. 완전히 존재하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


이 상태는 이상하게도 익숙하다. 어떤 감정이 그랬고, 어떤 계절도 그랬다.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어딘가에서 다시 보이는 것들. 맨디의 선은 그렇게 남는다. 분명 지워지고 있지만 동시에 남아 있다.



문양을 그리는 사람의 손은 대개 느리다. 서두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선 하나가 조금 흔들려도 전체 패턴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미세한 흔들림 때문에 패턴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완벽하게 대칭인 문양보다 약간 어긋난 문양이 더 오래 시선을 붙잡는 이유는 아마도 거기에 있다. 질서가 아니라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이기 때문이다.



가끔 문양은 손목을 넘어 팔 위로 올라간다. 덩굴처럼 이어지며 피부 위에 작은 숲을 만든다. 그러나 그 숲에는 중심이 없다. 중심이 없기 때문에 길을 잃을 수 있다. 길을 잃기 때문에 오래 바라보게 된다.



페이스트가 완전히 마르면 얇은 껍질처럼 부서져 떨어진다. 그 순간 남는 것은 진짜 문양이다. 조금 더 짙고 조금 더 명확한 선. 그러나 그 명확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몇 번의 물과 몇 번의 낮과 밤이 지나면 다시 흐려지기 시작한다. 문장은 읽히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오래된 사실이 이 작은 문양 속에서도 반복된다.



타투와 맨디를 구분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아마 시간일 것이다. 타투는 시간을 고정하려는 몸의 결정이고, 맨디는 시간이 흘러가도록 허용하는 몸의 태도에 가깝다. 하나는 남기기 위해 새기고, 다른 하나는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잠시 붙잡는다. 결심과 망설임 사이의 거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둘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피부는 기억력이 좋은 종이다. 상처를 기억하고, 햇빛을 기억하고, 누군가의 손길을 기억한다. 맨디의 문양은 그 기억들 사이에 잠시 들어온 방문자처럼 머문다. 며칠 동안 피부는 그 방문자를 품고 다닌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문양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문장이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문장은 결국 희미해진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주 옅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은 문장이라기보다는 분위기다. 문장을 기억하지 못해도 어떤 문장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남는다.



어느 날 거의 지워진 손등을 바라보다가, 문양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선은 이미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선들이 한때 서로 얽혀 있었다는 감각은 여전히 피부 어딘가에 머문다.



그래서 완성된 예술이라기보다 진행 중인 상태에 가깝다. 그려지는 동안에도, 가장 짙어지는 순간에도, 그리고 거의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들은 고정되지 않는다. 잠깐 머물렀다가 다른 형태의 기억으로 이동한다.



어떤 문장도 결국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잠시 어떤 삶 위에 머문다. 그리고 천천히 흐려진다. 그러나 흐려지는 동안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어딘가에서 아주 얇은 선 하나가 남는다.



그 선은 의미라기보다는 방향에 가깝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선. 그리고 어떤 손등에서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문양 하나가 아주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는 중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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