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훔치는 사람들

읽는다는 것은 가장 조용한 절도일지도 모르지

by 적적


문장은 가끔 물건처럼 진열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쓴다기보다 팔기 위해 만든다. 서점의 신간 코너처럼 반짝이는 문장들이 어둠 속에서 은은한 형광을 낸다. 그러나 그 문장들을 바라보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왜인지 모르게 그 문장들이 이미 누군가의 삶에서 오래 사용되다 버려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중고시장에 나온 낡은 의자처럼. 앉으면 삐걱거리겠지만 분명 누군가의 체온을 기억하고 있을 의자.



가게의 문을 열면 종소리가 난다. 그 종소리는 오래된 학교 복도의 종과 비슷하다. 금속이 금속을 살짝 긁으며 나는 소리. 그 소리는 사람을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문장이 조금 더 신비롭고 조금 더 위험했다. 어른이 된 뒤에는 문장이 설명이 되지만, 어린 시절에는 문장이 사건이었다. 가게 안에는 책이 없다.

대신 종이들이 있다.

종이들은 벽에 붙어 있고, 어떤 종이들은 작은 병 속에 말려 들어가 있다. 어떤 문장은 액자 속에 들어 있고, 어떤 문장은 천장에 매달려 있다. 마치 물고기 시장의 말린 생선처럼. 문장들은 공기 속에서 천천히 흔들린다. 문장이 흔들리면 의미도 조금 흔들린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이 있다.



봄날의 오후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가 먼저 늙는다.



이 문장은 병 속에 들어 있다. 병은 코르크 마개로 막혀 있다. 누군가 마개를 열면 문장이 도망갈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문장은 종종 도망간다. 문장은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에게 더 빨리 달아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장이 있다.



사랑은 항상 가장 작은 소리로 시작된다.



이 문장은 종이컵 안에 들어 있다. 종이컵은 오래된 커피 얼룩이 묻어 있다. 누군가 이 문장을 썼을 때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커피가 식어버릴 정도로 오래 문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가게의 가격표는 단순하다.

짧은 문장: 3천 원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 7천 원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문장: 가격 문의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다. 가격표는 있지만 계산대가 없다.


계산대 대신 낮고 납작한 유리 접시 하나가 놓여 있다. 오래전 빛을 한 번 끓였다가 식혀 굳힌 것처럼 미묘하게 흐린 광택을 띠는 접시다. 창문으로 들어온 오후의 빛이 접시 가장자리에 걸리면, 그 빛은 잠시 망설이다가 바닥으로 천천히 흘러내린다. 어떤 사람은 거기에 동전을 내려놓는다. 동전이 닿을 때마다 얇은 금속의 떨림이 유리 속으로 스며든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는다. 대신 문장을 한 번 더 읽고, 조금 더 오래 서 있다가, 조용히 종이를 떼어 간다. 접시는 그 모든 장면을 가만히 받아들인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얼굴로. 다만 그 위를 스쳐 지나간 손의 온기와 잠깐 머물렀던 빛의 무게만을 아주 얇게 간직한 채, 다음 문장이 떠나갈 때까지 조용히 식어 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문장을 읽는다.

어떤 사람은 문장을 사진으로 찍는다.

어떤 사람은 문장을 훔쳐간다.

그렇지만 가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가게의 주인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주인은 어디 있나요?


그러면 가게 안쪽 벽에 작은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주인은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이 문장은 다른 문장들과 다르게 조금 낡아 있다. 아마 가장 오래된 문장일 것이다. 종이의 가장자리는 누렇게 변했고 잉크는 조금 번져 있다. 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사람들은 그 문장을 읽고 잠깐 멈춘다.

그 순간 이상한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 가게에서 팔리는 모든 문장은 훔치고 싶지만, 단 하나의 문장만은 훔칠 수 없다. 바로 그 문장. 주인은 질문을 받지 않는다는 문장.

문장을 훔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문장은 이미 훔쳐져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오래전에 훔쳐갔고, 그 흔적만 남아 있는 것이다. 벽에 붙어 있는 종이는 복사본에 가깝다. 진짜 문장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의 일기장 속에. 어떤 연인의 문자 메시지 속에. 어떤 소설의 마지막 문장 속에.



가게의 밤은 낮보다 조용하다.

문장들은 밤이 되면 조금 더 또렷해진다. 낮에는 사람들이 문장을 읽지만, 밤에는 문장이 사람을 읽는다. 어떤 문장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기다림이 있다.

문장을 사는 사람은 있지만

문장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드물다.

주인은 문장을 사지 않는다. 주인은 문장을 알아본다.



가게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런 순간을 보게 된다. 누군가 어떤 문장 앞에서 멈춘다. 아주 오래 멈춘다. 다른 사람들은 지나가지만 그 사람만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문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결국 종이를 떼어 간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벽에 붙어 있던 문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작은 흔적이 남는다. 마치 못을 뽑은 자리처럼. 아주 작은 구멍. 문장이 있던 자리.


문장이 있던 자리.

문장이 떠난 자리.

문장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자리.


그래서 가게의 주인은 아마도 묻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문장을 가져갔는지.

왜 가져갔는지.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그런 질문들은 문장을 작게 만든다.

문장은 질문보다 조금 더 큰 것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 가게의 주인은 어쩌면 문장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문장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장사와 조금 다른 종류의 노동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물건을 팔지 않는다. 시간을 판다. 문장은 시간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도시 어딘가에는 그 가게의 진짜 주인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는다. 묻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문장을 훔치고 싶은 사람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은 사실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장은 항상 훔쳐지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가장 훔치고 싶은 문장은 언제나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가게의 불은 오늘 밤에도 켜져 있다.


문장들은 천천히 흔들리고

종이들은 가볍게 숨을 쉬고

누군가는 문장을 읽고

누군가는 문장을 훔친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가게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쩌면 오늘 그 가게를 지키고 있을

당신.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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