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발화점.

아무것도 없던 종이가 갑자기 뜨거워지는 순간.

by 적적


성냥을 긋는 순간은 언제나 짧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시간이 늘어진다. 마른 성냥개비의 머리가 거친 성냥갑의 옆면을 긁는 동안, 아주 미세한 분말들이 서로 마찰하며 사소한 열을 만든다. 그 열은 처음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작은 불씨 하나가 깜박이며 나타난다. 불씨는 아직 불이라 부르기 어려운 상태다. 그것은 그저, 어둠이 잠깐 스스로를 잊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버려진 문장도 대개 그런 상태로 존재한다. 책상 위에는 이미 여러 번 구겨졌다가 다시 펴진 종이들이 놓여 있다. 문장은 지워지고 덧씌워지고 다시 찢긴다. 어떤 문장은 너무 과장되어 있고, 어떤 문장은 너무 무심하며, 어떤 문장은 그저 살아 있지 않다. 작가들은 그것을 ‘버린 문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버려진 문장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마치 마른 나뭇가지처럼 종이 위에 쌓여 있다. 잘라낸 형용사들, 과장된 비유들, 너무 빨리 도착해 버린 결론들. 그것들은 모두 언젠가 불에 잘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들처럼 보인다.



성냥의 작은 불씨가 종이 끝에 닿는다. 종이는 생각보다 쉽게 불을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잉크가 먼저 반응한다. 글자가 있던 자리에서 아주 얇은 갈색 선이 번지기 시작한다. 마치 문장 자체가 스스로를 지우며 어딘가로 떠나는 것 같다. 종이의 섬유는 서서히 말려 올라가고, 불꽃은 조심스럽게 종이의 가장자리를 핥는다. 그 순간의 불꽃은 공격적이지 않다. 그것은 마치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좋은 글의 첫 문장도 비슷하다. 처음의 문장은 독자를 붙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불씨일 뿐이다. 불씨는 화려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오래 꺼지지 않는 온도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독자는 그 온도를 느낀다. 불씨가 있는 문장은 조용히 숨을 쉰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장은 이미 다음 문장을 향해 아주 작은 열을 보내고 있다.



불꽃은 조금씩 커진다. 종이의 가장자리가 검게 말려 들어가며 얇은 소리를 낸다. 아주 미세한 파삭거림이다. 불은 늘 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보통 그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러나 가까이 귀를 기울이면 알게 된다. 불꽃은 무언가를 먹고 있는 동안 계속해서 작고 건조한 소리를 낸다. 종이 속의 공기와 섬유와 잉크가 서로 분해되며, 작은 폭발 같은 것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문장도 그런 식으로 타오른다. 좋은 문장은 갑자기 커지지 않는다. 그것은 미세한 폭발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단어 하나가 다음 단어를 건드리고, 그 단어는 또 다른 문장을 건드린다. 문단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겉으로 보면 그것은 단지 문장들의 배열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열이 그 사이를 이동하고 있다.

불길이 이제 종이 한 장을 넘어선다. 종이 더미의 모서리가 붉게 달아오르고, 얇은 불꽃이 서로를 찾아 붙는다. 불꽃은 늘 서로를 찾는다. 하나의 불꽃은 혼자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 그러나 둘이 만나면 갑자기 몸집이 커진다. 불길은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마신 것처럼 팽창한다.



좋은 글도 마찬가지다. 단어는 혼자서는 약하다. 문장은 혼자서는 금방 식어버린다. 그러나 어떤 문장들은 서로를 발견한다. 하나의 문장이 다음 문장을 끌어당긴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불꽃이 같은 공기를 공유하는 것과 같다. 그 순간 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온도가 된다.



불은 이제 조용히 방을 밝히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종이를 태우기 위한 작은 불이었다. 그러나 불길은 어느새 공기를 바꾸어 놓는다. 방 안의 온도는 조금씩 올라가고, 어둠은 서서히 뒤로 밀려난다. 불은 단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간을 다시 만들어낸다.



좋은 글도 그렇게 공간을 바꾼다. 누군가가 문장을 읽는 동안,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보이지 않는 방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 방에는 냄새가 있고 온도가 있으며 아주 미묘한 빛이 있다. 독자는 그 방 안에 들어가 앉는다. 그리고 문장들이 타오르며 만들어내는 열을 느낀다.



불길은 이제 가장 안정적인 상태에 들어간다. 불은 처음 타오를 때보다 오히려 이때가 가장 조용하다. 커다란 불길은 요란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깊게 숨 쉬는 동물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타오른다. 장작은 붉게 달아오르고, 불꽃은 천천히 위로 올라간다.



좋은 글의 중반부도 그렇다. 처음의 문장들이 불씨였다면, 이제 문장들은 장작이 된다. 글은 더 이상 독자를 놀라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꾸준히 타오른다. 독자는 그 불 앞에 앉아 천천히 몸을 녹인다. 어떤 문장은 불꽃이 되고, 어떤 문장은 숯이 된다. 불꽃은 빛을 만들고, 숯은 오래 지속되는 열을 만든다.



불길 속에서 문장은 점점 형태를 잃는다. ‘사랑’, ‘기억’, ‘밤’, ‘바다’. 그런 단어들이 쓰여 있던 자리들은 이제 모두 붉은 재가 되어 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단어들이 사라질수록, 그 단어들이 말하려던 감정은 더 또렷해진다.



좋은 글은 결국 문장을 남기지 않는다.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 문장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몸은 기억한다. 마치 오래 불을 쬔 사람처럼, 독자의 마음에는 어떤 온기가 남는다. 그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불이 점점 잦아든다. 큰 불길은 서서히 낮아지고, 붉은 숯이 바닥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그러나 불은 아직 살아 있다.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따뜻한 공기가 피부를 부드럽게 밀어낸다.



좋은 글의 마지막 문장도 그렇다. 마지막 문장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불을 완전히 끄지 않은 채 남겨두는 일에 가깝다. 독자가 책을 덮고 방을 나간 뒤에도, 그 불은 어딘가에서 천천히 타오르고 있다.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버린 문장을 모아 올 것이다. 종이 위에 흩어져 있던 말들, 너무 일찍 쓰여 버린 문장들, 아직 온도를 갖지 못한 단어들. 누군가는 그것들을 다시 모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성냥을 긋는다.


작은 불씨가 태어난다. 버린 문장에 불을 놓으며.


글은 다시 시작된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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