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큼 여름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지난봄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선택받지 못한 쪽은 기억에서 사라는 건지도 모릅니다.
동네 슈퍼 앞으로 관광용 버스가 늘어서 있습니다. 버스가 보이기 전에 커다란 버스에서 나는 자동차 냄새와 기름 냄새 그리고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먼저 눈앞에 보입니다.
그해 봄 아니 그전의 봄도 그 버스가 있었던 자리에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사람 많은 곳은 질색하셨던 어머니께서도 일찍 일어나 그날만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오랜 시간 동안 하시고 나갈 채비를 하시며 하지 말아야 할 일과 꼭 해야만 할 일들을 계속해서 얘기하고 또 하고 나가실 때까지 당부하셨습니다.
아직 꽃들은 깨지도 않을 시간에 사람들은 꽃을 보러 버스 앞에 대기를 하고 어디서 저토록 원색적인 원단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옷을 차려입고 봄을 타려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 날이면 그 전날 사고를 쳐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있거나 인원수가 맞지 않아 생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돌연 참석하게 된 사람도 생겨나곤 하였습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엄마가 버스에 오르고 버스가 시동을 걸고 사라지면 남겨진 남편들의 아이들은 엄마의 바람과는 다르게 온종일 늘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하였습니다.
봄은 그렇게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어야 돌아오신 어머니는 발목까지 오는 스타킹을 벗고 다시 집안을 치우고 잔소리를 하며 저녁을 먹이고 낮은 소리로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드셨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동네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로 찍은 풍경이 밑줄을 그은 하나의 문장처럼 선명해져 사진 속의 인원수대로 인화되어 돌아갔습니다.
꽃을 보러 간 사람들은 꽃은 보고 나무 아래서 꽃다발 속에서 선명하진 못한 인물 사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사진첩에도 그런 몇 장의 사진이 아직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개 돌이면 봄이 거기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지쳐있었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봄은 오지 않고 꽃은 피어나지도 않는 거라고 이 아침이면 서늘한 봄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건널목에 서서 퇴근 시간에 돼도 환한 하늘을 보며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거기서 그 소리를 듣습니다.
건물 옆으로 어린이 영어 학원이 있었습니다. 꽤 큰 학원이었고 작은 학원 버스가 열대씩이나 있어서 같은 목적지마다 아이들이 길가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팔과 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인도를 돌아다니며 괴성을 지르고 울고 싸우고 선생님을 부르고 차 문을 두드렸으며 모든 아이는 배가 찢어질 듯이 웃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 벚나무 한 그루가 그 어린이 영어 학원의 아이들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 아래로 가자 그다음 벚나무가 그다음 벚나무가 꽃송이로 바통을 이어받으며 공원까지 나를 인도하였습니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가 들어가는 거래
가끔 꽃 사진을 찍다가 멈칫하곤 합니다.
공원엔 근처 고등학교에서 나온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아이들보다 꽃그늘 아래를 뛰어다니거나 멍하니 꽃을 바라보는 아이들과 그 아래를 한없이 걷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머리에 벚꽃 가지를 꽂고 남자친구 아이의 품에 안겨 웃는 여자아이들.
어릴 땐 그 기억이 나는 거야 어느 꽃 어느 나무 아래를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것 꽃의 기억은 그곳에 함께한 사람과의 기억인 거지
이제 겨우 꽃이 보이는 거야.
사람만 보이던 봄이….
사람으로 기억되던 봄이….
그리고 사람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풍경만이 남겨진 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