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손을 들어 올립니다.

우울 콘테스트

by 적적

민들레 피었습니다.


노란 상여 피어난다.


비가 조문을 읽고


햇살 문상객은 헝클어진

낡은 신발 짝을 맞추고


바람의 소지로 날아오른다.


장지는 모두 태어난 곳에서 가까운 곳


수의 마를 동안.



봄날의 장례식에 다녀옵니다. 들꽃들은 태어난 곳이 곧 무덤이며, 장지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이제 민들레의 점령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린 일을 잠시 쉬며 백수가 된 친구에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구석에 틀어박혀만 있지 말고 동네 다니며 민들레 홑씨라도 불어줘 얼마나 힘들겠어 줄기도 꺾지 말고 가만히 엎드려 홑씨만 불어 날려줘 한번 날릴 때마다 우리가 돈 모아서 한 개에 150원씩 쳐줄게


어릴 때 만난 친구들은 모여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별다른 얘기도 서로의 궁금증도 별반 없습니다. 우린 서로의 침묵에 익숙했으며 말 없는 친구에게 관대했습니다.

끼니를 때우는 일도 익숙하게 한 곳을 찾아갔으며 밥을 먹고 나면 그냥 거리를 배회하다가 아무 곳이나 들어가 또다시 먹던 음료를 마십니다. 아니 늘 혼자 하던 일을 같이 모여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런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모이는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묻는다고 해도 딱히 대답할 말도 없거니와.

혼자만의 동굴에서 나와 좀 더 큰 동굴로 모이는 짐승들 같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상처받을, 시간이 필요한 곰도 있고 개도 있고 개구리도 있고 나무나 풀도 있고 말이죠.


수많은 데자뷔 속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그 한 장 한 장을 현상도 없이 손에 들고 허공에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간혹 다시 한번 찍기도 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과 포즈로 너무도 흔한 가족사진 같습니다. 다들 사진을 찍고 모두 흩어지기를 바라며 서로 모여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우린 서로의 우울을 얘기합니다. 그것을 우린 체계적인 우울이라고 얘길 했으며 서로의 우울함에 거수하며 이렇게 얘기하고 했습니다.


“그래 그건 우울할 만했다.”라고


타인에게 우울을 말하기 전 판돈을 걸었습니다. 그 우울함에 만장일치를 꿈꾸곤 하였지만 늘 그보다 더 깊은 우울로 첫 번째 우울은 가볍게 눌러버립니다. 우린 게임을 하듯 우울의 승자를 가렸고, 3주 연속 우울의 왕좌를 차지하면 우울의 콘테스트에 걸었던 상금을-대략 20~30만 원의 금액은- 왕의 우울에 경배하며 건네졌습니다.

점점 더 깊은 우울에 관해 탐색했습니다. 지금도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왕의 우울에 비하면 나의 우울은 종이에 베인 상처처럼 혼자만 따갑습니다. 상처를 벌려보면 피부 속 하얗게 벌어진 나의 내부로 통하는 흰 문이 보이지만 정작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상처라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왕좌에 오른 상처는 대부분 가시를 뽑지 못해 곪은 우울이었고 이미 늦어버린 각성이었으며, 짧은 숨을 몰아쉬며 견뎌내 보면 쓰고 있던 두꺼운 모자를 벗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해도.


그래요 그건 우울할 만했습니다.


당신 우울에 제가 가만히 손을 들어줍니다.

이전 22화동네에 이팝나무가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