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떠나는 기억 속에는.
계절은 아마도 지난 계절을 기억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가올 계절은 견뎌내느라 어찌 보낸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왜 저런 곳에 살고 있을까 할 정도로 외지고 햇살이 잘 들지 않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나무 앞으로 재활용을 버리는 작은 공간이 있고 그 앞으로 주차 관리를 할 수 있는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있습니다. 이팝나무는 멀리 보아야 보이는 나무인 데다 나무 아래 있었던 자동차들은 떨어진 꽃잎들로 나무 아래를 지나왔거나 나무 아래 정차해 있었던 것을 꽃으로 증명합니다.
어제는 이팝나무 아래를 지나왔을 노란색 어린이집 버스에서 빗물에 달라붙은 이팝나무 꽃잎을 보았는데 네 개의 날개를 가진 아직 이름도 없는 요정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바람이 등에 업고 있던 포대기를 살짝 들춰보면 빗물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들어있습니다.
비가 오기 전 하늘엔 구름이 생기는 법입니다. 한동안 먼 하늘부터 머리 위까지 구름이 뒤덮여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살고 있는 곳엔 드디어 오월스러운 아침입니다. 가장 멀리 보이는 하늘부터 고개 들어 올려다본 하늘까지 구름 한 점 없습니다. 아직 젖어있는 땅을 제외하곤 햇살로 눈이 부신 아침입니다.
흐린 하늘을 좋아하는 저는 젖은 빨래 같은 몸으로 햇살이 찰랑거리는 거리를 민달팽이보다 조금 빠른 걸음걸이로 걸었습니다.
오래전 코로나로 세상이 어두워졌을 때 썼던 편지는 아직도 전달되지 못한 채 제게 있습니다.
깊은 밤 은단 같은 별 하나 보고 낡은 봉투를 열어 편지를 다시 읽습니다. 뒤집어 눌러쓴 글자들도 만져봅니다. 지난달 접견 신청은-직계 가족 우선 -으로 번번이 누락되었습니다
변산에서 처음 봤을 때도 마지막 면회 때는 더 작아지셔서 출소하면 소년이 되는 게 아닌가 아득한 걱정이 들었습니다
접견 신청을 예약한 풍경은 면회 나가면 손주 같다던, 들어서 방으로 들어갈 때면 쓰다듬지 못한 머리카락들의 보드라움 등에게 미안하다는, 열어 둔 창이 작으면 어깨까지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풍경을 끌어오라던 형 말이 꺾인 발목에 드러난 부러진 뼈처럼 아픕니다
조만간 면회 가겠습니다
오늘 영치금 조금 넣어드렸습니다 손주 같은 풍경 맞으실 때 따스한 차라도 챙겨가시길 바랍니다
형의 풍경을 함께 볼 수 있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게
풀 먹인 한지를 여러 번 겹쳐 서로를 당기는 일처럼 억세고 질긴 것 같아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종이장에 불과하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부처가 되고 하루는 살인자가 된다고.
안에서든 밖에서든 비슷할 거라는 말도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형 헤어질 때 했던 말 기억나요?
무리해서 걷지 마라 오랫동안 써야 할 테니….
ps. 민혜 형 건강하셔야 합니다
마음속에도 정원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펼쳐진 숲과 나무를 새로 발견한 풀잎들을 창을 들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