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해바라기, 햇살의 부산물.
눈을 감고 있어도 시간을 알 수 없을 만큼 밝아져 있는 햇살이 감지됩니다. 눈꺼풀은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면 바스러지는 감자칩처럼 부서져 버립니다. 식물처럼 일어나 가까이서 목덜미를 비벼대는 고양이 한 마리를 쓰다듬는 일로 잠을 추스릅니다.
S의 집안은 늘 어두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햇살만이 조명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벽에는 괘종시계가 있었는데 매일 태엽을 감기기 위해 뚜껑을 열어야 했습니다. 작은 열쇠 같은 것을 꽂아 뻑뻑해질 때까지 돌려줘야 했는데 S는 그 손길이 무척 익숙해 보였습니다.
S의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제일 오래 살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매일 아침 동네를 커다란 싸리 빗자루로 쓸고 다니셨는데 자고 일어나면 동네 길가는 깨끗해져 있어서 아무도 없는 길가에서도 그 빗자루가 스쳐 간 자국을 보곤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S가 할아버지 집으로 온 것은 초등학교 5학년 10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로운 여자아이가 동네에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동네에 퍼졌었지만, S를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시더니 할아버지 집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할아버지 신발 사이로 작은 운동화가 놓여있었습니다.
네 어머니에게 일러두었으니 S와 잘 지냈으면 좋겠구나
할아버지가 건넨 초코파이 한 상자를 손에 쥐고 멍하니 앉아있던 S를 처음 보았습니다. 사내아이는 마루 끝 창가에 무릎을 꿇고 앉은 계집아이를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뒷모습을 바라다보았습니다.
텅 비어 있구나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혼자만 살아남게 된 S.
연고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맡겠다는 사람이 없자 한 번만 거절의 말을 하면 되는 할아버지가 S를 맡게 되었습니다.
매일 학교가 끝나고 나면 초코파이를 떠올리며 할아버지 집 앞에서 S의 이름을 부릅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당 앞 작은 자갈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발자국 닮은 소리가 들리고 초록색 대문은 시간을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1~2시간쯤 머물러 있다 집에 오곤 하였습니다. S의 곁에서 같이 책을 읽거나 할아버지가 내주시는 간식을 먹었습니다. 가끔 눈길이 마주치면 벽에 걸린 괘종시계, 각종 절기가 적혀있던 커다란 달력, 창가에 심어 놓은 꽃이 피지 않아 어떤 풀인지 알 수 없는 화분 같았지만, 그냥 거기 있다가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간혹 같은 나이또래의 계집아이들을 데리고 가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S를 우리는 해바라기라고 불렀습니다. S는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습니다.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태양을 일직선으로 바라보곤 하였는데 옆에서 이름을 부르거나 어깨를 건드리기 전까지 계속 태양을 바라다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시도 쉬지 않고 해바라기 씨를 먹었습니다. 지상의 모든 해바라기 씨를 다 먹어 치울 것처럼, 해바라기씨앗만 먹는 사람처럼.
숨을 뱉어내는 것처럼 씨앗의 껍데기를 뱉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뱉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그거 맛있어?
해바라기 씨앗을 이빨 사이에 끼우고 지그시 누르면 씨앗의 틈이 벌어질 거야 그 틈을 혀로 벌어지게 한 다음 씨앗만 꺼내 먹는 거지 껍데기는 뱉어내면 돼 예전에 키우던 앵무새가 그렇게 했어.
그 앵무새는 지금 어디 있어
기억나지 않아. 그냥 해바라기 씨만 기억나.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은 게 좋아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거든.
그해 가을, 겨울이 지난 뒤 S가 초등학교 6학년에 같이 등교를 할 때까지 했던 대화는 그것뿐이었습니다.
11월이면 머릿속으로 S가 뱉어 놓은 해바라기 씨앗들이 축축한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그 이후 S에 관한 얘기를 더 묻는다면...
기억나지 않아요 그냥 해바라기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