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기자 5년 차. 하루하루가 벅찼다. 새벽부터 12개 일간지를 번개같이 훑고 선임에게 전화를 건다. 담당 지역에서 밤새 벌어진 사건 사고와 보도 내용을 보고하고 지시대로 취재에 돌입한다. 내 자리라는 곳은 원래 없다. 길거리, 커피숍, 난간 계단… 아무 데나 앉아 컴퓨터를 켜고 기사를 써댔다. 종일 현장을 어슬렁거리며 맴돌다 보면 하루가 저물었다.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매주 돌아오는 아이템 회의. 툭하면 지방 가는 주말 근무. 24시간 연속 근무하는 지옥의 야근. 연휴마다 돌아오는 기획 기사. 그 와중에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사건사고. 하루를 막아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물이 콸콸 쏟아지는 둑을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는 기분이랄까.
하루살이 내 인생
몸도 견뎌내질 못했다. 발암물질 넘쳐나는 화재 현장 갔다 오면 피부가 뒤집어졌고 산에 한번 다녀오면 다리도 신발도 만신창이가 됐다. 여름 취재 현장은 땀냄새 도가니, 겨울 야외 뻗치기(취재 대상을 기다리는 일)는 다섯 겹을 껴입어도 끔찍했다.
이 지긋지긋한 회사 생활에서 탈출구는 임신뿐이었다. 육아휴직을 할 수 있잖아? 회사를 안 나가도 되잖아? 신혼 생활도 슬슬 지겨워졌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임신을 하기로 했다.
임신만이 탈출구?
인공수정을 하고 한 달 반쯤 지났을까. 늦은 밤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집에 오자마자 다 게워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축하드려요. 피검사 수치가 아주 높아요. 임신이에요.” 그렇게 임신 소식을 들었다.
처음 본 초음파 검사 화면에는 좁쌀만 한 물방울 두 개가 찍혀 있었다. “쌍둥이네요.” 의사는 연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다름 아닌 바로 내가, 임신을 했다는데 쌍둥이라는데! 정작 나는 잘 모르겠다. TV 다큐 프로나 유튜브 영상 접한 것 마냥. 마치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원하던 걸 해냈다는 성취감? 주변에서 바라던 '인생의 숙제'를 달성했다는 미묘한 기쁨? 그 외에는 그냥 그랬다. 별 감정이 없었다. 급작스럽게 남들만큼 뜨거운 모성애를 느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당분간 술은 안 먹기로 했다. 기형아 위험을 높인다는데, 잠깐을 위해 일생일대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과도한 카페인은 조산 위험이 있지만 하루 커피 두 잔까지는 괜찮다니, 매일 먹었다.
빼앗긴 내 몸
임신 8주를 넘어서자,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이 시작됐다.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과식하고 나서 급체한 것만 같았다. 다시 표현하자면, 술 먹다가 체한 다음 날 숙취를 경험하는 그런 끔찍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탓했다. '조심해야 한다는데, 마구 먹고 다녀서 이렇게 됐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갈수록 나아져야 하는데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아무것도 못 먹었다. 급기야 물만 마셔도 수시로 토악질을 했다. 입덧이었다. 세상의 냄새가 극도로 선명해졌다. 음식 냄새, 담배 냄새, 향수 냄새… 냄새 공해에 취해 핑핑 돌았다. 마치 술 취한 사냥개가 된 것 같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영양분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몸에 침투한 생명체가 다 빼앗아갔다. 눈가가 떨렸고 손톱이 부서졌다. 뼈에 구멍 난 것처럼 몸살에 시달렸다. 사흘 나흘씩 화장실도 못 갔다. 이 답답한 기분은 말로 설명 못 한다. 마음의 준비도 마치기 전에, 화면 속 물방울들은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병원에서 처음 본 초음파 화면에는 6mm 크기 '물방울 두 개'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다
이미 아기 엄마가 된 주변 선배들은 말했다. "그냥 참고 견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이런 막연한 해법이 어디 있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 쓸 방법이 딱히 없는 게 말이다.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던 부모님의 가르침은 전혀 소용이 없다. 나 자신을, 더 이상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의사를 찾아갔다. “견디기 힘들면 타이레놀을 드세요.” 그런데 단서가 붙었다. “이 약이 태아에게 나쁘다는 보고는 없지만, 안전성이 입증되지는 않았어요. 상태 봐서 본인이 선택하시면 돼요” 미국 FDA에 따르면 타이레놀은 동물 실험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실제 임산부에게 주는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B등급 의약품이다.
살아야겠다 싶어서 먹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니. 이 말인즉슨 나쁜 결과가 생길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나 자신을 위해 약 먹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하다니. 짜증이 났지만 괜스레 불안해져 복용을 중단했다. 그리고 최근 타이레놀 복용이 아이의 언어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안도했다.
온전한 자유를 꿈꾸며
다행히 입덧은 한 달 정도 후 잦아들었다. 엄마 선배들 말대로, 시간이 흐르자 정말로 괜찮아진 것이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는 말처럼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걷는 게 힘들어졌다. 숨 쉬는 게 버거워졌다. 누워서 잠잘 수 없었다. 수시로 배가 아팠다. 태동이 늘면서 갈비뼈를 가격 당했다. 산 넘고 산 넘으니 이제는 진흙탕이 펼쳐졌다.
'임신한 뒤로 항상 이래 왔지 뭐.' 나는 체념했다.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나는 두 생명체의 숙주로 자리 잡아갔다. 처음 겪는 입덧 공격으로 인해 예민해졌던 신경도 조금 무뎌졌다. 낯선 생명체와 한 몸을 나눠 쓰는 동거 상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힘든 회사일 안 하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간 이 기분은 뭐지. 그러고도 나는 또 데자뷔처럼 '임신만 끝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 후에는 온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달콤한 착각을 하면서 그 시간을 버텼다. 앞으로도 한참 동안 '물방울 친구들'과 지지고 볶고 한 몸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 때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