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이 그렇게 천국이라며?"라고 물어오는 친구들에게 해주는 대답이 있다.
"하루 종일 젖 짜느라 겁나 바빠."
다른 엄마들의 답변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3시간마다 젖 물리고, 젖 짜고, 젖 다루는 법을 배우는 곳이 바로 산후조리원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김없이 모유 수유의 늪에 빠졌다. 부풀어 오른 젖을 부여잡고 나 역시 젖소처럼 젖을 짜기 시작했다. 졸다가도 짜고, 밥 먹다가도 짜고, 티비 보다가도.. 일어나자마자 짜고.. 3시간마다 젖을 짜는 기계가 됐다. 수도꼭지처럼 틀면 나오다 보니 싫어도 안 짤 수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늦어지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칼로 베는 듯한 아픔이 찾아왔다.
뱃속의 돌덩이 같은 아가들을 꺼내고 나면, 신체의 자유가 찾아올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수박만 한 배가 사라지자 이제는 참외만 한 가슴 두 덩이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왜 임신 중에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이것 또한 비극의 시작이라는 걸.
젖 짜다 보니 하루가 끝났다
그런 와중에 주변 어른들은 나에게 독촉을 해댔다. 중독자 마냥 진통제에 의존하며 병상에 누워있는 나에게 제일 먼저 젖은 잘 물리냐, 젖은 잘 나오냐고 물었다. 지금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반병신 상태인 나에게 위로와 걱정은커녕 내 가슴의 안부만 물어대는 것이었다.
모유 수유 중단을 선언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젖 짜는 느낌이 썩 좋지도 않은 데다 이 피곤한 업무를 굳이, 무한 반복해야 하는 영문을 도통 모르겠는 거였다. 처음 마주한 예쁜 아기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아까운데, 왜 고통 속에서 싫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가. 게다가 반 벌거벗은 몸으로 젖을 짜고 있는 나에게서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나의 행복한 출산이 이렇게 ‘ 젖젖젖'으로 귀결돼야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됐다.
모유 안 먹으면 지능이 낮아진다?
친정 엄마는 나에게 '나쁜 엄마'라고 했다. 모유 수유 중단은 '절대' 안 된다고 협박 메시지까지 보내면서 말이다. 모유를 먹이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IQ 지능지수가 현저히 낮아질 거라는 것이다.
산후조리원 간호사 선생님 역시 나를 환자 취급했다. 겉으로는 나를 이해하는 척 부드러운 말로 어르고 달랬지만, 나의 상태를 '불쾌한 젖 사출 반사’ 증후군이라고 명명한 뒤 안타까워했다. 주변 반응이 이러다 보니, 충분한 모유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주변 엄마들은 하나같이 쓸데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니, 나 역시 오기가 생겼다.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것이 나쁜 엄마의 척도일까?
분유가 아빠 육아를 돕는다
엄마 영양분을 먹고 자란 태아에게 모유가 맞춤형 식단일 수 있지만, 모유 수유 자체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행복한 선택만은 아니다. 책 '프랑스 아이처럼'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모유 수유를 오래 하는 미국 여자들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라고 한다. 분유라는 대체재가 있는데 굳이 피곤한 선택을 할 필요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거다. 게다가 분유 수유를 택함으로써 아빠의 육아 참여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친정 엄마의 주장처럼 모유가 아이의 지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1995년 영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30년 전, 브라질에서는 모유 수유를 한 아이가 분유 먹은 아이보다 IQ가 4점 더 높았다고 한 연구 결과도 있다.
모유 예찬론을 펼치는 어른들 주장 역시 모순 덩어리여서 신뢰성이 떨어진다. 아기가 황달에 걸리면 모유는 영양가가 낮기 때문에 먹이면 안 된다는 말은 또 뭔 소리인가. 어떤 엄마에게서는 영양가 없는 '물젖'이 나온다는 건 사실인가. 그렇다면 어찌 모유가 완벽할 수 있다는 거지? 모유 수유가 최고의 다이어트라지만, 모유 수유로 인한 가슴 처짐 현상은 어쩔 셈인가. 그건 그냥 '완모'를 한 영광의 상처 같은 건가.
엄마 미치게 하는 쌍둥이 수유
쌍둥이 동시 수유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두 아이를 양 옆구리에 끼고 한 번에 젖을 먹이는 '풋볼 자세'가 제일 유명한데, 둥이 엄마들은 하나같이 괴로움을 호소한다. 일단 두 아이를 동시에 몇십 분씩 안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허리가 부서질 것 같다', '등이 아프다', '팔이 아프다', '온몸이 아프다'고 다들 난리 난다. 이게 안 되면 번갈아 먹여야 하는데, 이럴 경우 젖만 물리다가 하루가 다 간다. 쌍둥이라고 모유 수유량이 알아서 두 배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비용 문제도 있다. 분유만 먹였을 경우 사흘이면 큰 분유 한 통이 뚝딱 사라진다. 한 달이면 10통, 수십만 원이다. 젖병을 적어도 10개 이상 사야 하고 이걸 닦는 것도 미칠 노릇이다. 나는 심지어, 분유 자동 제조 기계도 샀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다 보면, 모유 수유한다고 수유 쿠션 사고, 유축기 사고, 수시로 가슴 마사지 받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비용만으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은 그 누구도 아닌 엄마 몫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여성으로서 나의 존엄함까지 훼손시켜가며 아이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일단, 그냥 육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체력도 안 된다.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나도 안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 눈에 나는 나쁜 엄마, 이상한 엄마일 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