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에 걸쳐 서서히 독립을 마음먹는 과정에 대하여
헤이조이스에서 '단단'이라는 분의 SNS강의를 들었다. 13년 차 마케터로서 이런 걸 강의로 듣는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비용까지 결제해 가며 열심히인걸 보면 내 속마음도 참 간절하긴 한가 보다. 강의 내용은 사실 홍보로 알려진 것과는 달라서 우선은 실망했다. 다만 강의해 주신 분이 본인의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데 묘한 동질감(?)이 들어 위로가 되었고 그분이 브런치에 남긴 기록들을 추가로 읽어보며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에 단서를 얻었다. 그중 아래 링크의 글이 너무 좋아서, 같은 프레임으로 나도 내 지난 시간을 기록을 해보려 한다. (참고 글: https://brunch.co.kr/@melanie-jg/127)
나의 회사생활 - 독립준비 타임라인
2010년부터 2023년까지
2010년 ~ 2013년 l 직장생활 1기 '미생 그 자체의 신입사원'
첫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 시작. 고등학교 때부터 꿈꿨던 정확하게 '소비재' '브랜드매니저'로 입사했기 때문에 무조건 잘 해내고 싶었다. 업무의 양과 질이 모두 늘 버겁게 느껴졌고, 내 몸에 잘 맞는 직장과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내가 꿈꿔왔던 일을 쉽게 포기한다는 게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아 별보고 출근, 별보고 퇴근, 주말 출근까지 불사해 가며 그 예쁜 옷에 내 몸을 맞춰보려 애썼다
2013년 ~ 2016년 I 직장생활 2기 '외국계는 다르구나, 워크&라이프 분리
그렇게도 꿈꿨던 일이지만 스스로 만족에 다다르지 못한 채 풀이 죽어가는 3년을 보냈다. 다른 진로를 찾아볼까 했으나, 교수님, 선배님들의 권유로 '직장'을 한번 바꿔보기로 한다. 복지나 분위기가 확 다르다는 외국계. 지난 3년의 노고를 무기로 일은 쉬워졌고, 개인 시간은 남아돌았다. 이때 본격적으로 취향을 탐험하고 인맥을 확장하는 시간을 가진다. 각종 운동, 서핑, 꽃꽂이, 여행, 등등 시간과 돈이 모두 필요한 취미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부족했다. 첫회사에서처럼 조금만 의욕을 가지려 하면 detach 하라는 인사팀의 답변이 돌아왔다.
2017년 ~ 2019년 l 직장생활 3기 '세 번째 명함'
지난 두 회사 + 다녀보지 않은 회사들의 장단점을 두루 보완한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했으나, 곧 조직 변경으로 직무가 마케터에서 MD로 변경되었다. 원해서 얻은 직업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고, 설득해 내는 역할이 적성에 썩 잘 맞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코칭'이라는 걸 접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으나 '나에게 주어진 삶인 직장생활'을 더 잘 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즈음 신사업을 일궈본 경험으로 대기업을 벗어날 용기를 가지게 된다 (이게 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지..)
2020년 I 스타트업 Part1. '스타트업 고군분투 적응기'
스타트업 이직 후 1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 이직에도 적응이 힘들다면 직장생활이 나랑 안 맞는 건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하고 싶었고,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간 해오던 코칭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명상수업 (MBSR)을 들으며 나만의 칼날을 연마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한다. 이 길도 아닐지도. 전문 코치로서 브런치에 프리랜서 체험기를 남겨 카카오 메인에 게재되기도 했으나 구독자를 늘리고, 지속적인 구독층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유튜브를 직접 개설해 보고, 영상을 찍고 편집해 보고, 인스타에도 부계정을 개설해 운영했다. 회사를 벗어나게 된다면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들이었다.
2021년 ~ 2023년 I 스타트업 Part2. '박수 칠 때 내려가자, 퇴사!'
같은 회사에서 팀장으로 신사업을 맡게 되었다. 매출 0원이던 사업을 3년 만에 30억 비즈니스로 성장시키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건 큰 성과다. 역시. 나는 회사체질이야 라고 착각하며 드디어 뼈를 묻을 회사를 찾았다고 생각했던 순간, 회사가 큰 위기를 겪으며 구조조정 카드를 꺼냈다.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원초적인 생존본능이 6개월의 긴 고민 끝에 퇴사를 불러왔다. 오늘은 내 인생에 첫, 대책 없는 휴식기를 가지게 된 지 2주 되는 날.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생활 중 가장 회사 일에 몰입했던 이 시기에, 그토록 바라던 개인 사업 아이템을 찾게 되었고, 현실화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전에는 공부해서 알았던 뉴미디어, SNS, 디지털 따위가 내 일상 속으로 깊게 스며들었다. 뭐든 깊이 알아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나로서는 인플루언서들이 '보여지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로 어떻게 하루하루 노력하는지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였다.
2023년 6월 I 백수1기 '그리고 지금'
독립할 마음을 진지하게 먹는데 꼬박 13년이 걸렸는데, 지긋지긋하게도 아직 '독립할 결심'은 내지 못했다. 1) 성장세의 인플루언서 업계에서 지난 개인사업자로 먹고 살기란 (아마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명암이 분명한 업계인 건 확실하다 2) 모름지기 '내꺼'라면 좋아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니까, 앞으로 30년은 거뜬히 나를 먹여 살릴 일이라면 굳이 13년의 커리어는 과감히 포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얼른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최근 개설한 인스타그램 요리 계정. 예상외로 빠른 속도로 팔로워가 늘고 있는 것도 고민에 한몫 3) 이도 저도 너무 어렵다면, 이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더라도 직장생활로 시간을 벌며,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신중하게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독립할 결심을 내는데 꼬박 13년이 걸렸다. 향후 몇 개월 안에 내가 하는 선택이 그 시간을 더 늘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어차피 언젠가는 독립하게 될 사람. 주변에서도 말한다. 어차피 사업하게 될 사람. 어차피 자기 일을 하게 될 사람. 한 친구는 신내림을 거부하는 무속인처럼 내가 운명을 거부하고 있다고.. (ㅋ)
다음 글 예고
궁금해해 주세요.. 제발.. (근데 또 바뀔 수 있음 주의)
원글의 작가님처럼 '남을 따라 하는 글'부터 작성해 보았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글을 쓰며 떠오른 다음 글감들. 다음과 같이 생각을 이어서 정리해보려 한다.
현재 글) 회사원이 천직이라 믿었던 소심한 마케터가 13년에 걸쳐 서서히 독립을 마음먹는 과정
최애코칭 질문으로 계획 세우기) 지난 6개월 동안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아 후회되는 일은?
백수1기에 만난 사람들 1) 롤모델에 수렴하는 이꼬이 지원 대표님, 그녀의 자영업 테크트리
백수1기에 만난 사람들 2) 반보 앞서 내가 갈길을 걷고 있는 김소라 대표님과의 창업 회의론
백수1기에 만난 사람들 3) 27년 경력의 김영옥 사장님 관찰 일기
백수1기에 만난 사람들 4) 100만 뷰티 유튜버, 100만 패션 틱톡커, Just 여신, 3명의 인플루언서
독립 실전1) 인스타 계정 성장기 - 천명되면 쓸게요....
독립 실전2) 요식업 아르바이트로 자영업자 체험기 (회사생활과 비교)
번외편) 최애 회사를 퇴사하는 6개월간의 지리한 심경변화. 퇴사 체크리스트
번외편) 백수 1기에 읽은 책들
요즘 내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되어주는 요리사진으로 오늘 글은 마무리
요리 계정 https://www.instagram.com/oiaa_kit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