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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Mar 24. 2020

3살 5살 동생이 26세 백수 언니를
깨우는 방법

aka 괴롭히는 방법. 도원과 예린. 둘은 정말 다르다.

취준생(겸 백수 겸 알바생)인 나.


오늘은 9시에 일어나서 우리 집 밑 필로티로 쪼르륵 내려갔다. 시간 인증 앱을 켜서 사진을 찍는다. 카톡으로 하는 기상 스터디인증샷을 보내고 다시 침대로 컴백.


왠지 책이 읽고 싶은 날.


아이패드를 켜 박민규의 <죽은 왕녀의 파반느>를 읽으려 하니 어김없이 들리는 동생들의 싸우는 소리. 야아아아아 안 보여 비켜어어어 절로가아아아아. 서랍을 뒤져 유럽여행 갔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챙겨둔 싸구려 이어 플러그를 발견. 귀에 꽂는다.


한 열댓 장 읽었을까. 한 장 한 장이 수면제보다 달콤하다.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영. 눈이 감긴다.


우다다다다다.


도원이가 문을 신나게 팍! 하고 열고 들어왔다.


눈이 번쩍 하고 떠진다.


켜져 있던 형광등. 스위치를 팍! 때려 끈다.

(개빡침. 켜져있음 끄고 꺼져있음 켠다.)


"나래야(본인 이름). 피아노 쾅쾅 소리 들렸어?"

(피아노는 안방에 있다. 내 방과 가장 멀다. 아침에 시끄럽다고 한 소리 한 게 신경쓰였나.아. 언니라는 호칭을 듣기는 이미 포기했다.)


아니.... 하며 후 하고 한숨 뱉는 사이에 도원은 책상 위 탁상스탠드 스위치를 돌려 켠다. 책장 위 캔들워머가 약하게 켜져있는 걸 보고는 재빨리 바로 옆 또 다른 조명도 딸깍. 켠다.

망할 조명들

문을 쾅! 닫고 조명을 감상한다.

(이러고 보통 박수를 치며 히히히 좋아한다.)


이어플러그 꽂아서 몽롱한 내가 실눈 뜨고 반응 없자 내 팔을 핥는다.


으아아악! 소리지르면 더 좋아하고 더 할 걸 알기에 난 졸라 가만히 있는다.


졸라 꾹참는다.


도원은 또 두어 번 핥고 히히히. 지 혼자 웃더니 나간다.


다시 형광등 스위치를 팍 하고 켠다. 아닌가 꺼줄까아? 하더니 끄고 나간다.

(이래서 내가 스위처를 샀다. 방 불을 핸드폰으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장치다.)

매일 내 의사와 상관없이 불이 켜지고 꺼진다면 믿겠는가 (feat.도원) 내 라이프세이버 스위처..


하. 


긴 한숨 쉴 겨를도 없이 예린이 들어왔다.


언니야아~


뭐해? 하면서 시선은 침대 옆 거치대에 달려있는 아이패드에 꽂는다.

(핸드폰도 주 타깃인데 오늘은 아이패드다)


언니 뭐해? 언니야~ 를 반복하면서

(왜 자꾸 물어보는지. 잔다고 대답해도 계속 물어본다.)


아이패드를 계속 만진다. 수 분이 지났을까.


눈을 뜨고 보니 화면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시리를 불러냈다.


올라갈게.

(침대 위에 올라오겠단 의미다. 꽤 단호.)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서 올려주니

발쪽 이불 위에서 히히히힛 하고 웃는다.

기회만 되면 내 침대에 필사적으로 오른다.. 짜식들..

누워있는 내 몸 위에 자기 몸을 얹는다.


그러더니 다시 아이패드를 만진다. 할머니 온대. 할머니. 하고 나도 모르는 소식을 전하고 나간다.


문은 활짝 열어놓은 채로.


문 닫아줘~ 해도 도도도도 거실로 달려갈 뿐이다.


제길. 잠 다 깼다. 아직 귀에 꽂혀있는 이어 플러그를 빼니 종알종알 도원 소리가 더 선명하다.


26세 백수 언니. 흔한 하루의 시작이다. 고.. 고마워.




⬇️아이패드로 라인을 따서 일러스트를 만들어봤다!

도원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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