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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Aug 26. 2019

늦둥이 딸을 둔 아빠의 미용 일기

'할아버지'라는 말은 아직 서럽다. 

일주일 전쯤이던가. 아침으로 시리얼을 말아 입에 꾸역꾸역 욱여넣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아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이게 점점 번지는 것 같아."


손 끝을 따라가니 팔목엔 좁쌀보다도 작은 사마귀가 있다. 팔목을 비틀어야 겨우 볼 수 있는 구석진 곳에 있어 티도 안 난다. 며칠 전 작은 점은 1000원, 큰 사마귀 같은 건 2000원이면 뺄 수 있다며 동네 비뇨기과에 가서 점이며 사마귀며 빼고 온 아빠다. 그의 목과 손에는 아무렇게나 대충 자른 하이드로겔 밴드가 곳곳에 붙어있다. 


"글쎄, 작아서. 잘 모르겠는데?"


무심한 내 한마디에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며 집착의 이유를 툭 뱉는다. 


늙으면 생긴대.

아빠는 요새 부쩍 안티에이징에 힘쓴다. 빨간빛이 번쩍번쩍 나오는 레이저 피부관리기와 미세한 전류가 흘러 따끔따끔한 고주파 피부관리기를 매일 아침 꾸준히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와 보면 아빠는 십중팔구 그 기계를 얼굴에 대고 열심이다. 그렇게 관리한 지 벌써 한 달 반이라던가. 


밥을 먹다가도 묻는다. 


"아빠 좀 젊어지지 않았어?"


매일 보는 얼굴임에도 좀 젊어 보이는 걸 보면 꽤 효과는 있는 것 같다. 매번 열심히 호응해주긴 힘들지만 멋쩍은 웃음과 함께 "응." 하며 대답한다. 



아빠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두어 달 전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 시작됐다. 평소 동안임을 자부하며(꽤 인정한다. 50 중반에 가까운 나이에도 숱은 좀 없을지언정 머리도 벗어지지 않았고 확실히 우리 학교 교수님들보단 젊어 보인다.) 살아왔던 아빠는 엄마의 끈질긴 권유에도 안티-에이징이랄지 피부관리랄지 여하튼간에 외모 관리는 영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의 사건은 퍽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날도) 방에 누워 한량의 삶을 즐기던 어느 평화로운 날이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었는지 등원 시간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의 흥분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동생과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동생 보고 아빠를 가리키며


"자 할아버지 내리신다 너도 내려야지?" 


했다는 것이다. 무려 '할아버지' 소리를 들었다. 50대 중반에 2살 아이를 키우는 아빠. 가족끼리 있을 땐 '할아버지 뻘이다'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뱉긴 했어도, 동안 자신감 때문인지 한국사회의 오지랖을 간과한 것인지. 남이 뱉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날의 충격으로 아빠의 안티에이징에 대한 열정은 극에 달았다. 늦둥이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남의 시선까지 맞서야 한다니. 지금도 냉장고엔 기미 제거 팩의 재료가 될 생 레몬이 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삐-삑. 하는 가정용 피부관리기 소리와 함께 아빠의 하루는 시작될 거다. 


이런 아빠의 노력이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남의 시선을 이리도 신경 써야 한다는 현실이 씁쓸하다. 아이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보호자는 '할아버지'라고 단정 짓고 한마디 들은 게 서럽기도 하다. 


그리고 복잡하다. 나는 25살인데. '늙은 언니'란 존재하지 않으니. 노화를 촉진해 아예 '엄마'가 될 것인가.  아님 나 또한 안티에이징 해서 '조금 나이 많은 언니' 되기에 성공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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