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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Aug 26. 2019

이상한 가족. 어딜 가나 느껴지는 이 스포뚜라이뚜.

연예인 병 아님. 우리 가족에게 꽂히는 불편한 시선은 진짜다.

저번 주, 우리 가족은 홍천에 있는 워터파크에 다녀왔다. 이 날은 태풍이 와서, 저 날은 휴일이 가까워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누군가 약속이 있어서, 또 어느 날은 동생들이 감기에 걸려서. 차일피일 미루다 여름이 갈 채비를 하던 저번 주에 겨우 날을 잡아 집을 나섰다. 가족이 많으면 가는 날 정하기도 쉽지 않다.


참, '우리 가족'이라 하면 25살 프리랜서(라쓰고 백수라 읽는다)인 나, 50 중반의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이집 다니는 2살, 4살 동생 하나씩 이렇게 다섯이다.


해가 정수리 위에 있을 즈음 도착했다. 평일이었고 구름이 낀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눈치게임 실패로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슬슬 불안해진다. 늙은 언니 짬밥 수년차, 느껴진다 오늘도 '그것'은 피할 수 없겠구나.

바로


 시선


이다. 신기하게도 이 시선에는 어딜 가나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첫째, 흘끔거린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눈길이 닿을 수도 있다. 그냥 흘끔 댄다.


둘째, 빤히 본다. 혼자 막 가버리는 동생에게, 내가 다급해진 나머지 "언니한테 와!"라고 외친다든가 엄마의 손길을 바라는 동생들이 "엄마!"라고 큰소리로 부른다든가 하면 시작이다. 어떤 식으로 든 간에 우리 가족의 역할이 드러났을 때, 그때 '어라?' 하며 '빤히 보는' 두 번째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셋째, 행동으로 옮긴다. '누가 엄마인지'를 주제로 수군대거나, 더 나아가 직접적으로 말까지 건다. 나에게 "엄마예요, 언니예요?"라고 묻는다든가, 동생에게 "얘, 누가 엄마니?" 하며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우리 가족이 한 장소에 사람들과 함께 멈춰 있을 때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일어난다. 가령 엘리베이터 안이라든가, 지하철 차량 안이라든가,


워터파크 좁디좁은 온수 풀 안이라든가.


다슬기처럼 사람이 다닥다닥한 온수 풀 안에서의 15분 여 동안, 동생들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번갈아 꽂히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최대한 구석으로 엉덩이를 옮긴다. 동생의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작게 산토끼 노래나 불러댄다. 제발 누군가 말을 걸지 않길 바라며. 불필요한 시선을 불러 모을 수 있으니 '언니'라는 호칭은 절대 금지다.


50대 중반의 엄마 아빠와, 어린(동안이다) 여자 그리고 아이 둘. 흔하지 않은 가족의 구성에 시선이 가는 걸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동생들에게 '우리 가족이 이상하다'라는 인상을 남의 시선을 통해 주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악의 없지만 반복되면 무지하고 날카로운 질문이 되고 마는 시선과 말. 변명하는 것이 지칠 뿐이다.


경험적으로 내가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오는 시선을 피하며 모른 척하면 조금은 덜 주목받더라.


높아질 대로 높아진 자의식(아니 가족의식이라고 해야 하나) 탓에 시선 하나하나 알고 있으면서도 최대한 모른척하는 모순적인 스킬을 기른다.


시선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이상한' 가족이 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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