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자라는 아이

by 김나래

책 읽는 걸 좋아했던 난 어릴 때부터 심심할 때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곤 했다. 진짜 독서광이 된 건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였는데 어릴 때 책을 좋아하면서도 독서가 생활이 되지 못했던 건 생활환경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맞벌이로 부모님이 늘 바빴고 부모님이 집에서 독서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책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이나 친구들, 사회에서 알려주지 않은 이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알게 되면서 내 가치관이 새롭게 정립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사실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으로서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습관이 독서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글을 쓰는 일을 하며 독서 습관은 완전히 내 일부가 되었다.


아기를 낳고서도 당연히 나는 아기 책을 많이 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기가 책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었다. 전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내 아이가 어떻게 책을 싫어할 수 있지? 난 당연히 나를 닮은 내 아이니까 책을 좋아할 거라 단정했던 것이다. 아기는 내가 책을 들추기만 하면 책을 덮어버렸다. 읽기도 전에 책을 던져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른 아기들은 책을 보여주면 좋아하던데 우리 애는 아니었다. 세 살이 되도록 아이에게 책을 한 권도 읽어주지 못했다.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이에게 혹시 반감을 살까 봐 한동안 책은 아예 열지 않았다. 억지로 읽히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밖에서 하루종일 신나게 뛰어놀고 집에 들어와 재웠다. 그렇게 계속 시간이 갔다.


24개월이 된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아이 방에서 얇은 동화책 한 권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책을 넘겨 읽었는데 아이가 관심을 보였다. 아이의 관심이 사그라들까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 스토리를 전환했다. 그렇게 한 권을 다 넘기자 아이가 “또!!!”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세상에!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아이와의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그날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그 책을 계기로 아이는 책 읽는 기쁨을 알게 되어 점점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엄마의 노력이 필요했다. 일단 아이가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면 그것을 계속 유지시켜야 하는 노력이. 그러나 그것은 강요해서도 안되고 부담을 주어서도 안된다. 엄마의 노력은 아이가 느끼지 못해야 하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책을 읽는다는 인식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처음으로 읽었던 책과 결이 비슷한 책들을 찾아 몇 권 구매를 하고 아이의 취향을 찾아갔다. 아이는 자동차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한동안 자동차에 관련된 책은 보이는 데로 모조리 샀다. 자동차만 나온다면 아이는 무조건 봤다. 아이가 하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현관 앞에 자동차 책들을 깔아 두었다. 그런 뒤 아이를 데리고 오면 백발백중 아이는 책을 들어 훑어보았다. 그 책들을 다 보면 책장으로 가서 다른 책들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동차에서 과학으로 지식으로 분야를 넓혀갔다. 처음엔 창작 책만 보던 아이가 나중엔 가리지 않고 골고루 봤다. 나중에는 영어시리즈물을 좋아하게 되면서 방에 틀어박혀 세 시간씩 혼자 책을 봤다. 이미 자야 될 시간은 한참이나 지났기에 억지로 아이를 책과 떼어 내고 겨우 재울 수 있었다.

이런 날이 반복되고 나는 매일 저녁마다 하는 말이 “유진아, 책 좀 그만 보고 자!”였다. 책 좀 그만 보라고 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아이가 처음 책을 거부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러니 책에 관심 없는 아이들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조금만 노력한다면 충분히 책을 좋아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은 아이뿐만 아니라 아빠나 엄마도 책을 좋아해서 모두가 책을 읽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아이 책뿐만 아니라 선용과 내가 읽는 책들도 많아서 식탁에는 간이 책장이 올려져 있고 언제나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가끔은 신랑에게 좋은 책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읽어봤으면 하는 책을 권하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퇴근한 선용과 식탁에 앉아 각자의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나 떠오른 생각이나 깨달은 점을 서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때로는 글을 쓰기도 한다. 선용은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주로 육아 일기를 쓰며 그날 있었던 유진의 재밌는 말과 행동들을 이야기해 준다. 선용이 바쁜 덕분에 이런 대화를 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가끔이라도 이런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하면 풍요로운 기분이 든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나는 계속 틈틈이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아이는 그런 나의 모습에 관심을 보였다. 아이는 여행 가거나 이동할 때 아빠가 책을 읽는 모습도 자주 봤다. 그러니 그런 환경에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나와서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될 거라 믿었다.


책을 읽어서 좋은 점은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지만 몇 가지만 추려 보자면 첫 번째로는 언어 능력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가졌던 24개월의 시기가 아이에게는 말을 막 배우는 단계였고 말을 빨리 시작하지는 않았으나 일단 말을 하고 책을 보기 시작하니 언어 능력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아이는 또래들 중에 눈에 띌 정도로 말을 잘하게 됐고 그냥 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휘력이 특히 뛰어나게 발달했다. 언어에 대한 이해가 빨라서 어른들이 쓰는 말과 말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용만 한 것이 아니라 문맥의 뉘앙스와 비유 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잠자리 독서로 수면루틴을 잘 형성한 것인데 잠자기 전에 늘 침대에서 책을 몇 권 읽었기 때문에 아이는 잠자리에 드는 걸 불편해하지 않았다. 책을 빨리 읽고 싶어서 언제나 일찍 잠자리를 준비했다.

세 번째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연결하는 능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고 아이에게는 세상을 해석해 주는 해석자가 필요하다. 아이에게는 그것이 부모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시절은 어쩌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처음 보고 경험하는 세상의 해석은 앞으로 아이가 갖게 될 편견과도 일치한다.


어쨌든 부모의 해석은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부족하다. 부모의 해석은 늘 부모의 관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데 부모의 입을 통한 타인의 해석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다.

평소엔 관심이 없어서 내가 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책을 읽으며 할 수 있게 되고 아이는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작가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책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영유아기의 책은 시선에 관한 것이다.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 책을 많이 읽고 자란 아이들은 아마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깊을 것이고 배려심도 많을 것이다. 겨우 어른이 되어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는 이들에 비해 이 아이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간접적으로 느끼고 또는 상상하며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상상”이라는 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들 말고도 책은 읽을수록 득이 많은 일이고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야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관점의 전환이 생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난 우울하다거나 스스로에게 불만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늘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시험 삼아 읽어보면 정말 빠르게 치유가 된다. 책은 가장 값싼 마음의 치료제이다.

이렇게 좋은 점만 가득한 책 읽기를 어릴 적부터 시작했었다면 어땠을까? 얼마나 큰 이득을 내게 가져다주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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