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원래 티비가 있었다. 결혼 선물로 받은 아주 크고 좋은 티비였다. 나는 그전까지 티비없이 생활하는데 익숙했기 때문에 선물이 아니었다면 신혼집에 티비를 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티비 덕분에 우리의 신혼 생활은 조금 더 풍요로웠던 건 사실이다. 선용이 퇴근하면 함께 오붓하게 영화를 보곤 했다.
막상 아기가 태어나자 나는 티비를 없애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나는 늘 결혼 전부터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티비가 없는 집에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기를 낳고 일년쯤 지났을 때 티비를 없애자고 선용과 의논했지만 선용은 티비를 완전히 없애는 것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 년 동안 선용을 설득해 드디어 티비를 없애게 되었다. 그즈음 어차피 선용은 집에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티비를 볼 시간이 없었고 나 역시 티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티비는 틀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티비가 없어진 자리에는 책장이 들어왔다. 아이의 책 읽기가 폭발적으로 시작되었던 것도 이 시기인데 때마침 책장이 들어와 아이의 책을 더 많이 채울 수 있었다.
내가 티비를 없앤 것은 첫 번째로 우리 집은 티비가 있어도 틀지 않는 집이고, 두 번째로 티비를 틀어야 할 상황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틀 수 없는 환경이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티비가 없는 환경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길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심심해서 티비를 보는 것만큼은 없었으면 했다. 나는 아이가 심심하길 바랐다. 심심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아내고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티비가 없으니 아이는 정말로 심심함을 모르는 아이가 되었다. 다섯 살인 아이는 아직까지 한 번도 심심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의 생활이 심심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심심한 상황이 되면 아이는 방에 들어서 혼자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세 시간씩 책을 봤다. 놀라웠다.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남자아이가 그렇게 집중해서 오랜 시간 책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즈음이었다. 아이의 집중력이 늘어나기 시작한 건. 혼자 책을 보는 시간이 늘어서 엄마가 집안일을 하거나 개인 업무를 볼 때면 아이는 늘 방에 들어가 혼자 책을 보며 엄마를 기다려 주었다. 물론 그 누구도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거나 권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스스로 결정했다. 혼자 있어야 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까지도 아이는 엄마가 저녁 준비를 시작하면 고민 없이 방에 들어가 책을 읽다가 '유진아 밥 먹자' 하면 '네! 이거 한 권만 읽고 나갈게요!' 한다. 내가 느끼기에 아이는 책을 읽는 것을 마치 티비 보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무료한 시간에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만약 아이가 티비를 자주 접하는 환경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책들을 아이가 스스로 찾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아이는 티비를 틀어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선호도의 차이다. 나는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티비를 보는 것보다는 책을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할 필요가 없으니 아주 쉽게 아이에게 독서습관을 심어준 셈이다.
종종 아이가 말한다.
"엄마 일루 와봐! 유진이랑 놀자."
하며 아이는 바닥에서 뒹구르고 있다. 아주 심심해 보인다. 나는 그럴 때 대부분 설거지를 하고 있다. 좀 기다리라 말하면 아이는 아니라고 당장 와서 같이 놀자고 조른다.
"유진아, 너 지금 좀 피곤하고 지루하고 그렇지? 엄마는 일하는 중이라 지금은 못 가. 니가 뭐를 하면 좋을지 잘 생각해 봐. 아니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안하도 돼. 그런 시간도 필요한 거야. 그렇게 뒹굴 거리다 보면 뭔가가 떠오르겠지. 혼자 보내는 시간도 중요한 거야."
심심한 환경에서 바닥에 뒹구르기도 하고 멍하니 공상에 잠기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나는 아이에게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특히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짧은 동영상 하나도 길어서 차마 끝까지 다 보지 못하는 이 시대의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더 느긋해지는 것, 생각하는 것, 나아가서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아이를 그냥 심심하도록 두는 것, 그거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