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가르쳐 준 것

by 김나래

우리의 첫 신혼집은 공원이 아주 근사한 곳에 있었다. 공원과 맞닿은 곳이어서 마치 내 집 정원처럼 공원을 드나들 수 있었다. 아이를 안고 업고 사계절 내내 이곳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근처에 친구나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자연이 코앞에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자연을 동경했지만 정작 나는 자연을 즐기고 느끼지 못하고 책상 앞에 앉아 일에 빠져 살았던 시간이 많다. 결혼하기 전에는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작업만 하며 지냈다. 물론 가끔 산책을 하긴 했지만 한번 작업에 몰두하면 모든 걸 잊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일을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어둑한 저녁이었다. 시력이 매우 좋았던 나는 그 시기에 앞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가끔 아이가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볼 때 몇 시간씩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꼭 내가 작업할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구부정한 자세로 두세 시간이 지나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커갈수록 자기 집중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지라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무언가를 몰두하는 것도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전에 바른 자세로 몰두하기와 가끔은 중간에 환기를 시키는 방법 등도 알았으면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랜 몰두 후에 상한 몸을 다시 되돌리려면 더 큰 시간을 들여야 할 수도 있으니까. 중간중간에 환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연 바라보기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집에서도 수시로 명상할 수 있는 전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밖에 나가지 못한다 해도 집에서 큰 창으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면 저절로 환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안에서 커튼을 늘 활짝 젖혀놓은 채로 지낸다. 아이가 오며 가며 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몇 초든 몇 분이든 잠깐의 쉬어감이 마음의 환기가 될 수 있도록. 신선한 생각과 영감으로 마음을 채워서 새롭게 놀이할 수 있도록.

어릴 때일수록 안이 아닌 밖에서 직접 자연놀이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마음껏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짧다. 바깥에서 하루종일 놀 수 있었던 날은 겨우 아이가 두세 살 때뿐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바깥놀이를 하지만 그때만큼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다. 다섯 살이 된 아이는 바깥활동보다 집에서 조용히 뭔가를 끄적이거나 손으로 조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가 어렸을 때 가능한 많이 바깥놀이를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준 것이 나는 아직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밖에만 나가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던 아이의 눈을 기억한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사방을 헤집고 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선하다.


난 키즈카페나 어떤 정형화된 시설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아이의 놀이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거창한 자연놀이를 하기 위해 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도 않고 그냥 집 근처 공원이나 산책로를 주로 이용했다. 놀이터도 좋다. 산속에 작업실을 갖고 계신 아이의 할아버지 덕에 주말엔 늘 작업실에 가서 산속 나무들과 계곡, 고양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참 좋은 점이 자연놀이를 많이 해본 아이는 어디에서든 장난감이 없어도 자연물로 장난감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놀면 흥분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뛸 것 같지만 오히려 아이는 자연 속에서 차분하게 자신의 놀이를 계속한다. 성격이 급해서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에게 정말 좋은 환경이 되어주었다.

자연이 아이들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찾아보면 놀랄 만큼 많은 자료들이 있다. 이를테면 더 창의적이게 만든다거나 아이의 학업성적이 더 좋아졌다거나 하는 자료들 말이다. 그런 건 제쳐두고라도 일단 정서적으로 훨씬 더 안정감을 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내가 생각할 때 정서적으로 부족함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커가면서 점점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는데 아무래도 자연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한다. 워낙 활동적인 탓에 앉아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지금은 오히려 처음 만난 사람들은 아이를 얌전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아마도 느리고 차분한 자연 속에 있다 보니 점점 그런 자연의 성질을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루종일 자연 속에 있다 보면 배우는 것이 참 많다. 굳이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그것들을 터득한다. 아이가 뭔가를 배우거나 혹은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 나는 자연을 먼저 이해하고 느끼기를 바란다. 굳이 배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아이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며 기다리는 고 즐기며 감탄하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싶다.

자연에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료하지 않다. 모든 풍경이 그림이 되고 노래가 되고 영화가 된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아이들은 하루종일 자연과 대화한다. 가끔 지인과의 만남이나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가 있으면 우리는 꼭 야외 정원이 있는 곳으로 약속을 잡는다.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동안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 물과 돌과 풀을 장난감 삼아 놀이한다. 아이들은 날이 저물도록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놀이를 한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꽃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하며 기뻐한다. 지루할 틈도 없이, 피곤한 기색 없이 자연에 동화되어 놀이에 푹 빠졌다가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곤히 잠드는 날들도 있었다.

자연 속에서 보낸 하루는 아이나 어른이나 행복하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회복되는 시간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걸 하나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자연을 꼽겠다. 가장 중요하다. 모든 놀이의 기본이고 모든 교육의 선생이다. 될 수 있는 한 더 많이, 더 자주 자연과 함께하길 바란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장난감보다는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은, 그러나 내가 무엇이든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 수동적인 놀잇감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놀잇감. 주목을 끌기 위해 너무 화려하거나 현란함으로 무장한 것 말고 본연의 것을 내뿜는 것. 그런 건 자연 밖에 없다.

그 속에서 보낸 하루는 모든 것이 좋다. 가장 편안하고 완전하게 하루가 저문다. 역시 자연은 내가 지금껏 세상에서 많나 본 중에 최고의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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