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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래 Dec 07. 2024

육아 기본 원칙

  아이를 낳고 키우면 수많은 고민들에 부딪친다. 아이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아기와 관련된 것들 하나하나가 다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다. 오랫동안 이 고민과 선택을 끌고 나가야 하기에 조금 더 쉽게 하기 위해서 나는 육아 기본 원칙 세 가지를 정했다.


1. 쉽고

2. 편하고

3. 돈이 안 들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기본적으로 나를 위한 원칙이었다. 육아를 오랫동안 이어가려면 가장 필요한 가치였다. 이들 모두는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내가 아이에게 너무 힘쓰지 않고 애쓰지 않고 나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아이에게 애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아이에게 집착하거나 아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가 바르고 훌륭하게 크는 것을 어느 부모나 바라는 것은 같을 테지만 나는 방법적으로 아이에게 무리가 되거나 큰 부담을 주는 방식은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원칙을 정한 것은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어떤 것이기도 했다. 육아와 교육이라는 게 정말 그렇게 애를 쓰고 돈을 들여야 가능한 것인가. 사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진행 중이지만 정확한 결과는 나의 방식으로 아이를 기르고 난 뒤 몇십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에게 돈을 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아이에게 쓰는 돈이 아깝다거나 인색해서가 아니다. 어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나도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 싶은 부모 중의 한 명이다. 돈이 안 들어야 한다는 원칙은 나 스스로에 대한 증명이고 결심이었다. 아이에게 과도하게 쓰는 돈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기대하고 바라게 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될까 봐 나는 나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교육의 목적이 된다면 더욱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원하는 한도에서, 아이가 즐겁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싶다.

  양육과 교육도 분명 쉽고 편한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길을 알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무던히 공부하고 애를 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결코 쉽고 편한 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길보다는 아이와 내게 훨씬 더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줄거라 생각한다. 이 긴 육아의 여정 안에서라면 더더욱. 어쨌든 아이에게 가장 큰 스승은 부모이고 세상에 여러 가치들 중 더 나은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가치는 이렇다. 인생이 그렇게 애를 써야만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좀 힘을 빼고 가볍게 나아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아이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결정할 때도 이 원칙에 따라 아이를 보냈다. 어린이집은 아파트 단지 내의 시립 어린이집을 보냈고 유치원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립 유치원을 보냈다. 사실 나는 아이가 활동적이고 자연을 좋아해서 숲학교나 발도르프학교, 대안학교를 찾아봤었다. 아이에게 매우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입학설명회도 가고 아이를 데리고 기관에 여러 번 가보기도 했는데 결국은 입학금까지 내고 막판에 취소했다. 이유는 내가 정한 육아 원칙 세 가지에 하나도 부합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해서 가야만 하는 거리라면 일단 쉽지도 편하지도 안았다. 물론 돈도 많이 들었다. 겨우 네다섯 살 아이에게 이런 큰돈이 들어간다면 앞으로 투자라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그건 전혀 나답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기관이라 한들 기본적인 내 육아원칙에 하나도 부합되지 않는 곳을 보낸다면 앞으로 얼마나 수많은 날들을 이런 고민들로 내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고 반복하는 일들이 많을까.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 선용의 한마디가 내 정곡을 찔렀다.

  “아이가 다 클 때까지 졸졸 따라다니면서 아이의 인생을 편한 길로 정리해 주고 싶은 거라면 자기가 원하는 가장 좋은 학교에 보내.”

  그 말은 내가 했던 학교의 고민들을 단숨에 정리해 주었다. 현명한 말이었다. 언제까지 아이에게 잘 맞는, 가장 좋은 학교, 가장 좋은 환경을 내가 직접 가져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선용은 아이가 되도록 가깝고 가장 큰 학교로 진학하기를 바랐다. 소규모로 아이들을 섬세하게 케어해 주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아이 스스로 많은 것들을 헤쳐나가면서 다양성이 있는 큰 집단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맞닥뜨리는 것이 결국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에서였다. 그건 아이를 믿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였다. 나는 선용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애초에 내가 세운 육아 기본 원칙 세 가지는 가볍고 산뜻하게 힘 뺀 육아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내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정말 코미디 같았다. 내가 아이에게 진정 알려주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아이와 함께 배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떠올려봤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생은 바로 엄마다. 엄마인 내가 아이를 올바른 방법으로 양욱 한다면 아이는 어떤 환경이라도 올바르게 자라날 것이다. 이 점을 다시 한번 새기고 나는 내 원칙에 따라 가장 쉽고 편한 방법으로 아이를 기관에 보냈다. 지금까지 아이를 국공립 기관에 보낸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집에서 가까운 만큼 아이는 안정감을 느꼈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도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집 발코니에서 아이 유치원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서 아이는 하원하고 나서도 근처에 사는 친구들과 오랫동안 놀 수 있다. 아이는 기관에서의 활동을 짧게 하고 나를 만난다. 점심을 먹으면 그 뒤로는 늘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나는 오히려 훌륭한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덜 훌륭한 학교라도 짧게 다녀오고 엄마인 나와 오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엄마보다 훌륭한 선생님은 세상에 없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공립학교가 덜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다. 훌륭한 선생님들과 일관된 놀이의 흐름을 가지고 아주 재밌는 활동을 많이 하고 온다. 나는 현재 아이가 다니는 공립 유치원을 신뢰한다. 그런 신뢰는 아이를 편안하게 하고 아이 또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유치원에서 마음껏 놀다 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에 공감을 잘할 수가 없다. 현재까지는 돈이 정말 안 들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커감에 따라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맞추고 투자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보다 현재의 상황에 맞춰 잘 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돈이 드는 것이라면 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집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그조차도 돈이 들지 않을 것이다. 찾아보면 신혼부부나 신생아를 위한 혜택은 얼마든지 많다. 큰 집을 당장 사야만 하는 게 아니라면 작게 시작해 점점 키워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건 신혼부부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이런저런 시도와 도전을 해보고 실수해도 다 용서가 되는 시기이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키워나가는 경우를 나는 아주 많이 보았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아 그것을 유지하는 것보다 부부가 노력해서 함께 키워나가는 것이 인생에 더 활력을 주기도 할 것이다. 물론 더 재밌기도 하다.

  사실 집에 대한 욕심은 나의 것이지 아이들은 어디서든 잘 자란다. 만일 아이에게 집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내 욕망이 아이에게도 전염된 것이 아닌가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 가족도 작은 집에 살고 있지만 집에 대한 걱정은 없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상황에 맞는 더 넓은 집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기에. 그건 내가 걱정하고 안달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건너가게 될 흐름이다. 집의 크기보다 먼저 걱정할 것은 내 마음의 크기, 아이의 그릇 크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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