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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래 Nov 30. 2024

우리만의 결혼식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거추장스러운 건 다 배제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만 간소히 준비하기로 했다. 어려운 것도, 힘든 것도 없었다.

  사실 나는 결혼식에 대한 큰 욕망이 없는 사람이라 결혼식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만을 위한 목적인 것 같아서 그저 귀찮았다. 언젠가 아빠에게 결혼식을 안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았다가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보통의 결혼식은 다 허례허식 같았다.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 결혼식의 과정이 우리만의 것이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즐겁고 기억에 남는 날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준비에 앞서 나는 선용에게 결혼에 대한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결혼식은 우리의 것이고 결혼도 우리의 것이므로 부모님에게 의지하거나 금전적으로 최대한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끼리 알아서 준비하고 싶다고. 선용은 흔쾌히 내 의견을 수용해 주었다. 부모님들도 우리의 뜻을 존중해 주셨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의견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의견을 수용하되 결혼식 준비로 부모님들께 걱정과 스트레스를 드리지 말자는 취지였다.

  예물, 예단, 혼수 같은 건 일절 없었다. 없었다고 하면 기본적인 것 외에 안 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아무것도 안 해서 우리는 마음 편히 결혼식 준비만 하면 됐다. 빠르게 준비해서 두 달 안에 결혼식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지만 그래도 결혼반지는 필요했다. 나는 한 번도 커플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면 남편과 처음으로 커플링을 맞추고 싶었다. 결혼반지를 하면 실제로 일상생활에서는 잘 안 끼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일상에 불편하지 않을 심플한 디자인을 고르기로 했다. 매장에서 직접 본 뒤에 아주 작은 다이아가 박혀 있는 커플링을 골랐다. 이 정도면 평소에 무리가 없을 반지였다.

  우리는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지를 한 번도 뺀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나는 손에 있는 반지를 매만지며 선용을 생각한다. 생각보다 반지가 주는 힘은 크다. 내가 누군가의 아내라는 것을 상기하며 우리가 결혼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익숙함 속에서 얻는 이런 환기는 결혼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결혼식장은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아버님이 당시 재직 중이신 대학교의 웨딩홀에서 하기로 했다. 의미 있는 장소였다. 아버님이 퇴직하실 때까지 오랜 시간을 강의했던 곳이었고 선용과 그의 형이 그곳에서 공부했다. 삼부자가 청춘을 보낸 곳이었다. 결혼식장을 정하자 나머지는 수월했다.

  선용의 절친한 친구가 해남에서 지내고 있었다. 친구를 보러 갈 겸 여행할 겸 그곳을 찾았다. 가는 김에 드레스와 슈트와 삼각대를 챙겨갔다. 자연이 아름다운 해남에서 우리는 여행을 하며 웨딩촬영을 했다. 선용의 친구가 삼각대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사진을 찍어줬다.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맛집도 가고 커피고 마시고 바다도 갔다. 친구는 여행 가이드도 되어주고 포토그래퍼도 되어 주었다.

  한 번은 산길을 올라가는 중에 비가 왔다. 가랑비인가 싶더니 순식간에 세찬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온몸이 젖은 상태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바다에 갔을 때도 태풍에 머리가 날려 정신이 없었지만 개의치 않고 사진을 찍었다. 그 덕분에 사진 속 우리의 모습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과 영상들을 결혼식장에서 식전영상으로 틀었다. 지금 다시 봐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웨딩드레스는 드레스를 대여해 주는 곳에서 저렴하게 구매했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드레스 사진들을 보는데 그중에 하나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 드레스를 몇 벌을 입어본 뒤 처음에 마음에 들었던 그 드레스로 결정했다. 마침 그곳이 폐업 예정이라 저렴하게 드레스를 판매하고 있으니 사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드레스를 쉽게 구매했다. 여전히 그 드레스는 가지고 있어서 결혼기념일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이와 함께 셀프로 촬영을 하곤 한다. 아이는 드레스 입은 엄마를 공주님이라며 좋아해서 엄마 아빠보다 결혼기념일을 더 기다린다.

  드레스에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드레스를 고를 때 내 기준은 ‘무조건 심플하고 단정한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운 것들은 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실크소재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보고 한눈에 반했는데 단순한 나의 취향이었다고 생각한 그 드레스를 보고 한 작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실크병이라고 알아?” 그게 뭐냐는 내 물음에 친구가 대답했다.

  ”나도 들은 얘긴데 예술가들은 결혼할 때 꼭 실크드레스를 고른다는 거야! “

  엥? 진짜 그런가? 의심의 눈초리로 생각 중인 나에게 친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 주변에서 실크드레스 입고 결혼한 친구가 있는지 떠올려 봐. 없을걸? 만약 있다면 그 친구가 예술하는 친구 아니야?”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웬만해서는 실크드레스는 결혼식에서 입기 어려운 소재였다.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신부의 입장에서는 반짝거리고 화려한 드레스를 고를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장식이나 반짝이는 게 없는 실크드레스를 골랐다. 더군다나 거추장스럽지 않고 몸에 딱 붙게 떨어지는 핏의 드레스를 골랐다. 다른 신부들처럼 드레스가 질질 끌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앞부분에 신발이 보이게 5cm가량 떠있었다. 왜 그랬을까? 잘 모르겠지만 결혼식이라고 평소에 내가 선호하지도 않는 것들, 불편한 것들을 몸에 칭칭 감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는 싫었던 것 같다. 나의 결혼식이라면 적어도 내 취향과 나의 성격을 반영한 결혼식이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무조건 주목받는 결혼식이 아니라 그냥 나다운 것,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 알맞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야말로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결혼식을 앞둔 그 작가 친구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너도 실크 골랐어?”

  친구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결혼식에서 마주친 친구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그녀답게 알맞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심플한 드레스를 고른 덕에 결혼식 당일에 나를 도와줄 헬퍼가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짧은 드레스를 잡아줄 필요도 짧은 면사포를 다듬어줄 필요도 없었다. 헬퍼 없이 메이크업 샵에 가서 드레스를 입는데 직원들이 물었다.

  “이모님은 안 계세요?”

  이모님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탈의실에 선용이 함께 들어갔다. 드레스를 갈아입을 때 선용이 이모님을 대신했다. 뿐만 아니라 결혼식 내내 드레스가 흘러내리거나 매무새를 고칠 때마다 선용은 내 옆에서 든든하게 나를 도와줬다. 내 드레스를 직접 입혀 준 것에 대해 나는 두고두고 선용에게 고마웠다.

  헤어, 메이크업을 시작할 때도 나는 담당 디자이너분께 이런 식으로 해달라고 직접 시안을 드렸는데 조금 당황하신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그 또한 신부들이 선호하지 않을 법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도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을 요구했는데 디자이너분은 가르마를 타서 앞머리를 귀 쪽까지 내린 뒤 로우번을 하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무조건 올백으로 머리를 싹 다 올리고 하이번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디자이너분은 머리가 밋밋해서 티아라를 하자고 제안하셨지만 머리에 아무 장식도 하지 말고 내가 가져온 나뭇잎 핀만 뒤에 꽂아달라고 요청드렸다. 내가 원하는 대로 헤어, 메이크업을 마치자 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실 이런 정확한 요청을 할 수 있었던 건 이전의 경험들 때문이었다. 이십 때 시절에 모델활동을 하며 수없이 많은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본 덕분에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또 사진을 찍을 것을 고려하면 머리를 풀거나 내리거나 스타일링이 많이 들어간 것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사진은 단정한 머리가 가장 예쁘게 나온다. 특히 단점을 머리로 가리느니 차라리 완전히 오픈하는 게 자연스럽다. 역시 머리를 딱 붙여서 올백을 했으니 이 또한 헬퍼가 필요하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식장에 도착해서도 직원들이 내게 헬퍼가 없다는 걸 알고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식에 이모님 없는 신부는 처음 봐요. 그리고 운동화 신고 오는 신부도요”

  운동화를 신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신부 대기실로 나를 후다닥 밀어 넣었다. 신부는 결혼식장에 오는 순간부터 신부여야 한다며.

  “그럼 모든 신부가 입장 전부터 다 구두를 신고 들어왔다는 거예요?”

  “네 신부님만 빼고요.”

  하고 말했지만 여전히 나는 운동화를 신은 채였다.


  결혼식은 순조롭게, 즐겁게 흘러갔다. 우리를 닮은 방향으로, 우리만의 방식의 결혼식이었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을 떠올리면 여전히 즐겁고 기분이 좋다. 하나하나 우리 둘이 손수 준비한 것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내가 결혼식에 환상이 없었던 건 아마 우리 사회에서의 결혼식이란 내가 만들 수 없는 결혼식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화려하고 번쩍번쩍한 결혼식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 나와 어울리는 것, 편안하고 즐겁고 솔직한 것, 꾸미지 않아도 빛나는 것, 돋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예쁜 것. 이런 것들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나는 기꺼이 결혼식을 위해 내 시간과 노력을 기쁘게 할애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곳이 산속이든 들판이든 우리 집이든 상관없다.




<아래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던 실제 웨딩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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