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용과 나는 일을 하며 만났다. 선용은 추상화를 그리는 회화 작가였고 나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글을 쓰는 에세이 작가였다. 작업의 결이 달라서 한 번도 함께 전시를 하거나 협업을 진행한 적은 없었지만 같은 에이전시에 소속된 작가여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첫 만남에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고 두 번째 만남에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누가 먼저 좋아한다는 고백이나 사귀자는 얘기도 없이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났고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했다. 여느 연인들처럼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자주 만났다. 선용과 만나며 좋았던 점은 작업실에서 그림도 그리고 전시회장도 다니고 여러 예술문화 행사도 함께 참석하는 등 일과 연애의 경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일을 하러 가면 그곳에 선용이 있었고, 일부러 선용을 보기 위기 예정에 없던 행사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우리는 만나는 동안 기념일을 챙기거나 일부러 무언가를 계획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매일매일 소소하게 이어지는 하루가 즐거웠다.
선용은 카페를 참 좋아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낭만이 있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예쁜 카페들을 많이 다녔고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다. 어느 날 카페에 앉아서 '아, 바다보고 싶다.'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선용은 그 즉시 나를 데리고 바다로 갔다. 우리는 깜깜한 밤바다를 아이처럼 뛰어다니며 키득거렸다. 그는 내가 하는 사소한 말들을 귀담아듣는 사람이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말들을 기억했다가 언젠가 실행해 주는 사람이었다.
만난 지 몇 달이 지나자 우리는 헤어짐이 야속해졌다. 계속 더 같이 있고 싶어졌다. 내년쯤엔 함께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선용과 나는 둘 다 비혼주의자여서 -영원한 비혼주의자는 아니고 단지 그 시점에 비혼주의자였다.- 서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았는데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결혼에 대한 생각마저도 허물어 주었다. 선용과 함께 있을 때면 자주 우리의 미래가 그려졌다. 참 이상했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하던 나였는데 선용과 있을 때는 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임신했다. 아직 엄마로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극심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와 달리 선용은 침착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아마 그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위해 그는 최선을 다해 두려움을 숨겼을 것이다. 그는 나의 임신 소식에 망설임도 없이 무척 기뻐하며 우리는 잘 해낼 수 있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그가 어찌나 확신에 차 있던지 나는 그런 선용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안심했고 의지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선용이 두고두고 고맙다. 가끔 나는 묻는다.
"그때 어떻게 그렇게 확신했어? 무섭지 않았어?"
"나보다도 자기가 얼마나 무서웠겠어. 나라도 그런 확신을 가져야지. 자기를 사랑하니까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어."
선용은 그림 그리는 걸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또 유망한 작가이기도 했지만 그는 잠시 그림을 놓기로 결정했다. 나도 그림을 그리고 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미련 없이 그렇게 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빠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은 이제 김나래의 남편으로서 살 것이며 그것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꼭 나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우리의 결혼 생활에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선용의 그 마음 하나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면 다 괜찮을 거라고.
어떤 이들은 말한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고. 나는 사랑이 밥도 먹여주고 꿈도 꾸게 하고 희망도 갖게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내게 프러포즈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사랑만으로 어떻게 사냐고 사람들은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이 있어야 힘든 고난과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고 그런 믿음을 기반으로 우리가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 사랑 하나만으로 결혼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게 자랑스럽고 또 그만큼 우리가 잘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우리와 같은 '사랑이 밥 먹여 줄'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우리에게 그런 의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마법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마법이다. 사랑을 믿는 것이 사는 데도 유리하다.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은 가진 걸 잃었을 때 무너지겠지만 사랑을 믿는 사람은 모든 걸 잃어도 이겨낼 수 있다. 사랑을 믿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랑을 믿으면 모든 걸 잃어도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도 낭만이 있는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낭만이 있다면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 능력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무기가 아닐까?
결혼한 지 오 년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과 낭만의 힘으로 많은 일들을 잘 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현실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실은 단지 우리가 가는 길에 만나는 수많은 여행지고 여행객이고 기념품일 뿐이다. 그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사용하고 느끼고 기억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가 지금처럼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함께 그 길을 걸어간다면 그 여정에 마주하게 될 많은 비극들조차 우리에게 가르침을 줄 것이다. 다음 여정에서는 자신을 교훈 삼아 나아가라고.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우리가 만나는 비극은 결코 비극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여정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가끔 결혼 생활을 묻는 지인들에게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선용을 만나 결혼하고 유진을 낳을 거라고. 내가 현재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다음에도 다시 만나고 싶다. 똑같은 삶을 살게 된대도 상관없다.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대도 나는 선용과 유진을 만나 한번 더 살아 보고 싶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것을 하는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것들을 하며 더 깊은 사랑을 주고 싶다. 같은 것을 반복한대도 두 번째, 세 번째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