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은 나를 드러내는 삶이었다. 모델로 일하며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나를 완전히 드러내야 했다. 패션업계는 나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넘어 일그러진 욕망까지 넘치는 곳이었다. 남들보다 늘 돋보여야 했고 과한 관심이 필요했다. 그런 일상을 몇 년쯤 보낸 어느 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였을까. 그동안 노력해 온, 내가 이룬 성과에 대한 미련도 없이 정말 나는 떠나버렸다. 어쩌면 도망친 걸까. 어쩠든 간에 나는 뭐든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 말고도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다시 해볼 수 있을까? 그게 뭐든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이십 대 중후반은 뉴욕에서 보냈다.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종종 여행을 했다. 정말 바쁜 삶이었다. 공부든 일이든 노는 것이든 최선을 다했다. 낯선 환경에서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두려움보다는 신선함이었다. 그런 신선함과 활기참으로 마지막 이십 대를 꽉 채워 보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십 대의 대부분을 화려하고 소란하고 에너지 넘치게 보내서였는지 한국으로 돌아오며 나는 결심한 것이 있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종종 나는 뉴욕의 친구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당분간은 혼자 지내며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런 계획대로 나는 귀국 후 혼자 온종일 그림을 그렸다. 물론 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되는 일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그때 혼자 보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고요하게 보냈다. 가끔 예전의 이십 대 때와 삼십 대인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진다. 충분히 에너지를 발산한 과거 때문인지 지금은 이런 고요하고 차분한 삶이 행복하다. 혼자 일하는 것도 좋고 혼자 책을 읽거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좋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내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충족감이 좋다. 정서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이 느낌은 불안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상태로 선용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전의 연애처럼 상대방에게 의지하거나 안달하거나 사소한 일로 괴롭힐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도 선용과 성숙한 관계를 맺었다고 믿고 있다. 정서적으로 독립된 인간이 사랑에 빠지자 놀랍게도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전까지 사랑은 편안함 보다는 불안함이 더 많은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사랑의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저 나 자신,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성숙도에 따른 상태일 뿐이었다. 결혼을 하며 우리는 더 성숙해졌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한층 더 성장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가져본 적 없는 관점이 생기며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리게 됐다. 그 문은 그토록 내가 원하던 '완전한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지게 해 주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은 좋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과제이자 미션이 되어주었다. 여러 가지 어려운 미션들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며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제들을 성실히,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내 모습 또한 마음에 들었다.
차분하고 고요한 삶을 유지하는 와중에 만난 선용은 꽤나 역동적인 사람이었는데 다행히 그도 고요할 때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 그도 한번 작업실에 들어가면 하루종일 고요했다. 서로의 시간을 인정해 주고 개인적인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태도도 나는 선용에게 처음으로 대입해 본 일이었다. 그전까지는 상대방의 사적인 영역에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들어가려고 애썼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 주며 만났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선용이 출근하면 아기는 하루종일 나와 함께 있아야 했는데 내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환경이 늘 조용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있는 집은 늘 조용하고 고요하다. 그 고요함 속에 아이와 내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티비도 없고 음악도 없다. 음악은 가끔 재즈나 클래식 위주로 틀어두긴 했는데 그조차 아이와 대화와 놀이에 방해가 되어 꺼둔지 한참 되었다.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활발했다.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아이여서 나는 내가 추구하는 차분한 환경이 아이를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밖에서 신나게 뛰고 자유롭게 놀이하지만 자연적인 환경 안에서 놀게 두었고 시끄럽고 어지러운 곳은 데려가지 않았다. 키즈카페나 놀이공원 같은 곳은 내가 선호하지 않는 곳으로 아이를 내가 스스로 데려가는 일은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 화려한 조명과 불빛이 있는 곳, 시끄러운 곳, 이런 곳들은 내가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이어서 어쩔 수 없이 아이와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나도 이렇게 정신이 없는데 아이는 오죽할까. 산만한 곳에 다녀오면 아이는 십중팔구 밤에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낮의 흥분이 밤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일수록 특히 산만하고 소란한 곳을 기피했다. 차라리 아이와 동네를 산책하거나 놀이터나 공원에서 조금은 단조롭게 노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연스레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자리 잡혔고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 먹는 시간 등의 패턴이 고정되었다. 그런 틀에 박힌 생활이 아이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런 걱정은 거두어도 좋다. 오히려 규칙적인 생활은 아이의 불안감을 낮춰준다. 어린아이일수록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감이 높아서 이것은 부모가 낮춰주지 않으면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아이들은 불안할 때 떼를 쓰고 울거나 보채는 식으로 표현을 하는데 규칙적인 생활은 아이를 훨씬 안정적으로 만들어서 아이의 떼도 확 줄어든다. 아이는 스스로 어느 정도 자신의 생활을 예측할 수 있다는 데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이가 어릴수록 고정된 생활패턴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편안하다. 아이가 자라며 부모가 일정하게 만들어준 패턴은 점점 자신의 독립적인 생활 패턴으로 변화해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난 여전히 어른이 되어서도 일정한 생활 패턴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고 필요한 일인지 느끼고 있다.
내가 어릴 때 대도시에서 생활하며 나의 내면을 돌아보지 못하고 외면에만 집중했던 것은 환경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늘 시끄러워서 내 생각과 느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에 반해 고요한 삶을 살기 시작하며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하며 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사랑하고 믿는 법을 배웠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는가. “너 자신을 알라“고. 자신을 알아야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내면의 나와 가까워져야 하는데 이때 고요함과 차분함이 필요하다. 어릴 때 내면의 힘을 키우고 나에 대한 긍정적인 각인을 갖기 위해서도 나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도록 아이와의 시간을 조용하고 단조롭게 보냈다. 시시하고 심심하게 보냈다. 그 심심함 속에 아이가 내면의 나와 수없이 마주하며 대화하고 생각하고 상상하길 바랐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이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보다 익숙한 곳에서 가장 편안하게 내면의 나를 만나길 바랐다. 우리는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고 우리의 시간은 조용하고 고요하지만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이상하게도 평화롭다. 나와 선용의 관계처럼 나는 아이의 시간을, 또 아이는 나의 시간을 인정해 준다. 나는 아이의 사색할 시간과 홀로 책을 볼 시간을 이해해 주고 아이는 엄마가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시간을 이해해 준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지만 고요한 여러 날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듯이 더 많은 그런 날들이 쌓인 먼 미래의 어떤 날이 기대가 된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될까? 삶의 여정은 어쩌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와 나, 선용이 충실하게 자신을 탐색하고 수정하고 성장하며 이 멋진 여정을 함께해 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