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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래 Nov 20. 2024

밖에서 뛰어놀며 배운 것

  아이가 어릴 때부터 밖에 자주 나갔다. 선용이 출근하고 나면 아기와 둘이 남았는데 말 못 하는 아기와 집에서 함께 할만한 일은 별로 없었다. 무료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동네를 자주 산책했다. 커피를 사러 가기도 하고 집 앞 공원을 주로 걸어 다녔다. 공원을 걸으며 아기에게 이건 나무야, 이건 꽃이야, 꽃 향기를 맡아볼래? 하면서 말을 건넸다. 아기는 대답이 없었지만 아기와 함께 하는 그 길이 너무 평화롭고 편안했다. 아기는 밖에 나오면 잠을 잘 잤다. 그래서 아기를 재울 겸 하루에 세 번씩은 꼬박 산책을 했다. 한참을 아기와 걷다가 아기가 잠이 들면 집으로 돌아서 아기를 눕히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때론 아기 옆에서 단잠을 잤다. 아기를 자꾸 밖에 나가서 재워오니 부작용이 생겼다. 아이가 집안에서는 통 잠을 자려하지 않는 것이었다. 잠이 오면 자꾸 나가자고 울며 보챘다. 나도 산책하는 걸 좋아하기에 나가는 건 문제가 없었는데 이러다 아기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매일매일 밖을 나갔다. 역시나 아이는 오랫동안 혼자 자는 법을 몰랐다. 밤에도 늘 내가 안아서 재워줘야 잠을 잤다. 그래도 나는 돌이 지나도록 아이를 앉아서 재웠다. 물론 몸이 힘들고 피곤했지만 지금까지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를 원 없이 안아보았기에. 지금은 그 작은 아기를 안고 업고 다닐 때의 감촉이 그립다.


  그렇게 매일매일 밖에서 산책을 했던 아이는 자라면서도 밖에 나가는 걸 좋아했다. 특히 걷고 나서부터는 밖에 나가는 것을 유독 더 좋아했는데 아이가 두세 살 무렵에는 잠자는 시간만 빼면 집에서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특별한 곳에 데리고 다닌 건 아니다. 그냥 무작정 나와 발길이 닿는 데로 동네를 돌아다녔다. 집에서 고구마, 토마토와 과일 등의 간단한 저녁과 간식들을 챙겨 나가면 아이는 깜깜해질 때까지 놀았다. 그러고 집에 와선 씻고 바로 잠에 들었다. 이것은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또한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하루종일 집안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 전환을 하는 것이 내 정신과 기분에 더 좋은 일이었다. 놀이터나 산책 중에 아이의 친구를 만나 함께 놀면서 덩달아 나도 아이의 엄마와 대화를 할 수 있어 좋았다.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지내면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어른 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말을 못 할 시절에는 혼잣말하듯 떠드는 것이 전부이고, 아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해도 어른들과의 대화처럼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산후 우울증이나 육아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어른과의 대화를 좀처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동네 빵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이는 눈만 뜨면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곳은 그곳이 유일했다. 나에겐 너무 고마운 곳 중 하나였다. 아이와 함께 아침을 먹고 커피를 사서 근처 모래놀이가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 자전거에는 모래놀이 장난감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아이는 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 매일 모래놀이를 했다. 더우면 땀을 뻘뻘 흘리며 놀고 추우면 입김을 내불며 놀았다. 단순히 아이가 좋아해서 시작한 모래놀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한 모래놀이 덕분에 아이는 혼자서 집중해서 노는 법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는 어릴 때 한 번도 앉아서 집중 있게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매일 뛰어나디고 늘 흥분되어 있는 상태여서 집중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혼자서 무언갈 열중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같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다. 이로써 나는 어릴 때 마음껏 뛰어다니고 실컷 놀았던 경험이 나중에 때가 되면 스스로에게 더 큰 집중력을 주게 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바깥놀이의 또 다른 좋은 점은 바로 면역력이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 흔히 걸린다는 전염병도 잘 걸리지 않았고 자주 아프지 않았다. 물론 감기는 수시로 걸리긴 했지만 감기에 걸릴 때마다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집에서 잠을 푹 자고 평소처럼 밖에서 뛰어놀다 보면 감기는 금방 나았다. 내가 병원에 찾을 때는 오로지 아이가 밤새 뒤척이고 힘들어할 때였다. 그런 날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손에 꼽았다.

  가끔은 밖에서 그리 깨끗하지 못한 손으로 간식을 집어 먹었던 것, 추울 때도 많이 껴입지 않고 뛰어놀았던 것, 덥거나 춥다고 바깥활동을 너무 기피하지 않은 것, 비가 올 때 비를 홀딱 맞아보거나 더러운 진흙탕에서 놀아본 것 등등... 밖에서의 이런 많은 활동들이 아이를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물론 지금은 예전보다 바깥활동이 많이 줄었고 아이 혼자 앉아서 뭔가를 만들고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에게 나가자고 조른다.


  신나게 뛰어노는 일!


  그것만이 유일하게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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