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집중하자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더 이상 아이 걱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됐다. 어린이집에 우리 아이가 혼자 남겨져 있지 않을까 초초한 마음으로 퇴근을 하지 않아도 됐고 아이가 아프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사라졌다.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하루종일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일을 그만둔 뒤로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12시 30분에 데려왔다. 아이랑 함께 하고픈 마음에 어린이집을 퇴소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이 완전한 답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대신 나는 아이를 일찍 데려오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낮잠이 없는 아이였다. 어린이집에서 오전 활동만 하고 점심을 먹으면 아이를 데려왔다. 그러고는 하루종일 신나게 놀았다. 공원에서도 뛰놀고 모래놀이도 실컷 했다. 그림도 그리고 책도 많이 읽었다. 버스를 타고 근처를 여행하거나 연극을 보러 다녔다. 그 뒤 이른 저녁을 먹고 7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면 그때부터 나는 밀린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안일이나 일정 정리, 책 읽기, 글쓰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이 옆에 누워서 잠드는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육아에 집중하지 못할 때는 오히려 육아가 버겁게 느껴졌는데 온전히 육아만 하게 되자 꽉 찬 충족감이 느껴졌다. 아이와의 시간에 최선을 다할수록 그런 충족감은 커졌다. 엄마로서 만족감이 들수록 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도 커져갔다. 그것은 다시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다. 선순환이었다.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했다. 물론 모든 순간이 즐거운 건 아니었다. 기쁘기도, 슬프기도, 화나기도 하는 순간은 존재했지만 그건 단지 순간적인 감정일 뿐이었다. 감정은 감정이고 그렇다고 내가 불행한 건 아니었다. 화가 나는 순간에도 나는 동시에 아이와 함께 하고 있음이 감사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정말 그랬다. 그 순간들을 모은 하루가 참 행복했다. 매일을 그렇게 충족된 상태로 잠에 드니 피로했던 정신과 몸은 다음날 대부분 리셋되었다.
나는 매일매일 내게 물었다. “앞으로 아이와 허락된 시간은 얼마일까?” 이상하게도 나는 두세 살밖에 먹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며 그런 물음을 했다. 결코 시간이 많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오늘의 아이는 어제의 아이와 같지 않고 내일과도 다르다. 나는 아직 마흔도 채워 살지 못했지만 우리의 인생이 너무도 짧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마지막엔 인생이 정말 찰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짧은 한낮의 꿈같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는 동안 최대한 많이 사랑하며 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결국엔 내가 진실하게 존재했던 순간은 사랑한 순간뿐이 아닐까? 마지막엔 사랑만이 남지 않을까? 분명 사는 동안 더 사랑하지 못했음에 안타까워할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보며 나는 현재의 아이와 미래의 아이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그래서 아이와의 하루하루가 간절하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내가 일을 그만두며 죽음을 생각했듯이 언제나 인생이 끝이 있음을 생각하며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도 아이에게 내가 가진 시간들을 충분히 주었을 때 생겨났다. 동시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을 땐 이런 생각이 들 여유도 없었다. 많은 것을 시도하면 모든 것을 이룰 것 같지만 때로는 진실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내어줘야만 한다.
그래서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나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나는 여전히 아이와의 시간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는 여전히 이른 하원을 하고 있다. 하원 후 엄마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와의 하루하루가 아깝고 소중하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얼굴이 그립다. 지금 내 옆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지 모른다. 나는 또 미래의 아이의 모습을 겹쳐 보며 이 순간을 그리워한다. 만약 내 인생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 언제였냐고 한다면 나는 아이와 함께 했던 지금 이 순간들이라고 답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어떤 날이 다가 오든 상관없다. 지금 아이랑 함께 하는 내 젊은 날들을 가장 반짝였던 순간들로 기억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아이랑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아쉽고 그립다. 아이는 고작 다섯 살인데 이미 다 커버린 미래의 아이를 겹쳐보며 나는 꼭 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