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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래 Nov 13. 2024

나는 작가일까, 엄마일까?

  엄마가 되고 나서 한동안은 기쁘지만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되는 것은 분명 설레는 일이었지만 새로운 세계는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때까지 나에게는 일이 전부였기에 엄마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임신한 것을 알고 나서 만삭이 될 때까지 일을 했다. 이미 계획된 일은 모두 마무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지방으로 KTX를 타고 강의를 다니기도 했고 서점에서 작가와의 만남도 진행했다. 마침 나의 새 에세이가 나왔을 때라 할 일이 많아 바빴다. 새 책을 준비하면서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나는 임신 상태로 책을 쓰고 결혼 준비를 하며 예정된 행사나 일정들을 소화했고 집에서는 틈틈이 작업을 했다. 취소를 하려면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약속한 것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기도 했고 ’ 임신‘을 핑곗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커리어가 걱정되기도 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껏 내가 쌓아 놓은 내 경력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몇 년 동안 일을 못하게 되겠지? 그렇다면 그다음은? 그다음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걱정들이 나를 따라다녔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틈틈이 일을 했다. 아이를 재우고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브랜딩 할 공간을 보러 가기 위해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함께 가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직장인이 아니기에 시간을 자유롭게 써서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와 작가 사이에서 혼란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욕망은 강했다. 오히려 더 잘 해내고 싶었다.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몇 달간은 회사로 출퇴근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두 가지를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클수록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두 가지 모두를 잘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정은 사실 이전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었다.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편해지리라는 걸.

  그동안 나는 일이 곧 나라고 착각했었다. 그래서 일을 포기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내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일이라고,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결정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나 자신을 죽이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할 때 나는 늘 죽음을 떠올려 본다. 그러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온다.

  '나중에 죽을 때가 되면 내가 일을 그만둔 걸 후회할까?, 아니면 아이와 더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걸 후회할까?'

  답은 너무나 명확했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머리에 스쳐 지났다. 그간의 노력과 성과들, 첫 전시를 하고 첫 출간을 하던 날의 기쁨들, 먹지 않고 자지 않으며 작업을 하면서도 행복했던 날들. 그 모든 날들과 과거의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슬픔의 인사는 아니었다. 작별의 인사도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참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언젠가 더 성숙한 인간으로 이 자리에 돌아오겠다고. 과거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성장하겠다고. 그리고 난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정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이 아닌 순수한 ‘나 자신’이 보였다. 그동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다. 이제야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될 수 있는 한 훌륭한 엄마가 되자. 가능한 한 가장 멋진 엄마가 되어 보자. 그래, 해 보자!’

  나는 문득 그런 확신이 생겼다. 좋은 엄마가 되면 좋은 사람,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으리란 이상한 확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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