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건 내게 너무 먼 얘기였다. 이십 대 때는 해외 여기저기를 떠돌며 삶의 목적을 찾고 싶어 했고 삼십 대가 되어서는 일에 미쳐버린 일중독자였다. 늘 연애는 했으나 결혼은 미지수였다.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예술가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나는 ‘아기’라는 선물과 함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역시 비혼주의였던 그 남자는 만난 지 일 년도 채 안된 비혼주의였던 예술가 여자와 마법에 걸린 듯 순식간에 부부가 되었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얼마 안 됐지만 결혼 생활은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며 우리가 부모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처음 만나게 될 우리의 아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나는 그의 그림을 참 좋아했다. 그의 그림도 좋았고 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좋았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면 옆에서 가만히 글을 썼다. 한겨울, 입김이 새어 나오는 추운 작업실에서 언 손을 호호 불어 가며 서로의 옆을 지켰다.
언제까지나 둘만 존재할 것 같았던 세상에 아기가 태어났다. 너무나 작고 연약해서 손만 닿아도 터질 것 같던 아기. 그런 아기를 처음 마주한 나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나를 대신해 아기를 안고 재우고 먹이고 씻긴 것은 남편 선용이었다. 선용은 내색 없이 부모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물론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오랫동안 요리를 도맡아 해준 그였다. 그런 그의 안정적인 모습에 나는 점차 엄마로서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