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갓난아기였을 시절부터 나는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이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이었다. 어른 말을 사용해서 어른의 대화 형식으로 말을 했다. 아이가 서너 살이 될 즈음에 죽음에 대한 책을 접하고 나서는 그걸 궁금해했고 나는 죽음에 관한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죽음뿐 아니라 삶에 걸쳐진 모든 이야기들을 남편과 대화하듯 아이에게도 똑같이 이야기했다. 아이가 알아듣지 못해도 나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이야기해 주고 궁금해하는 모든 부분을 어른의 말로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이렇게 한 건 어떤 계획을 가지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아이도 나와 같은 인격체라고 생각하고 나와 대등한 입장이라 생각하고 대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게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도 분명 나의 생각과 자아가 있는 인격체인데 마치 나를 하등 한 존재라 여기는 그 모습이 굉장히 이상하게 다가왔다.
결혼 전에 책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아이는 미숙하지 않고 결코 어른들보다 하등 하거나 못 미치는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아이들은 세상과 사람들을 해석할 지식과 자료가 부족할 뿐이다” 여전히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면 나보다 나은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나는 그저 조금 더 많은 세상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뿐. 그러나 지식이 많다는 건 결국 고정관념이 많다는 것 아닐까. 말뿐 아니라 아이를 대할 때도 나는 아이를 기본적으로 나와 같은 인격체라고 생각하고 대한다. 아이는 이미 알지만 단지 신체가 완전히 자라지 않아 조금 헤매는 것뿐이다. 그러나 신체가 완전히 작동할 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격려해 주고 도와줄 순 있겠지만 아이가 할 일을 내가 대신해줄 수는 없다. 나는 아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집안일도 함께 한다. 시켜보면 생각보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좋아한다. 지금 다섯 살 아이가 집에서 스스로 하는 일은 샤워하기, 아침 등원준비(씻고 옷 입고 가방 챙기기 포함), 하원 후 가방정리, 놀이하고 장난감 정리, 간단한 청소, 식사준비 도우미, 재활용 분리수거 등 있다. 이 외에도 많겠지만 대충 나열한 것들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일들이다. 아이는 엄마가 하는 일을 함께 함으로써 자기 효능감을 크게 느낀다. 기관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잘 돕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아마 집에서 엄마를 돕는 습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아이답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마 아이의 순수함을 의도한 말일 거라 추측해 본다. 그러아 아이는 충분히 어른스러우면서도 순수할 수 있다. 아이의 순수성은 사실 어른들이 아이를 아이취급할 때 많이 손상된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도 돼! 하며 아이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어른들끼리 속된 말을 한다던지, 아니면 넌 그냥 가만히 있어! 라며 아이를 바보처럼 대하는 것들이 쌓여 아이는 아이스러움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다. 지나치게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 있다면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했을 확률이 크다. 부모에게 존중받은 경험은 나아가 스스로를 존중하게 해 준다. 당연하게도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려고 한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좋은 경험을 하는 등 삶의 모든 부분에서 말이다. 자신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도 똑같이 존중할 수 있다.
내가 아이를 어른처럼 대한다는 의미는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화가 난다고 어른인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막무가내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듯이 아이에게도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할 때 아이도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존중한다. 자신을 존중하는 이상 아이는 그에 걸맞게 행동하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나는 내가 하는 말이 다섯 살 꼬맹이에게 합당한 말인가, 자문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 생각과 사유들을 끊임없이 아이와 공유한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적절한 해석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도 나에게 그렇게 한다.
어쨌든 나는 세상에 대한 나의 해석을 아이에게 공유한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고를 판별하려는 게 아니라 삶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의 규칙을 많이 배울수록, 맨 처음 원래 갖고 있던 것들이 묻히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해서 상기하고 기억하고 떠올리면 그게 내 안녕과 행복에 꽤나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