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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Dec 07. 2020

사치스러운 불평



어느덧 재택 7개월 차. 이놈의 코로나 덕에 세상 둘도 없이 보수적인 회사는 내년까지 재택을 하겠다는 우울한 결정을 내렸고,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대해 장기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어마 무시한 말까지 내뱉었다. 


아무거나 먹게 되는 재택 9개월 차의 책상 + 식탁 + 휴게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엔 힘들지 않았다. 끔찍이 싫어했던 일 줄 하나였던 지옥철 타고 왕복 2시간 버리기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었고, 보기 싫은 사람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며, 하루 종일 안 씻고 잠옷 차림으로 일을 하다가 남편이 올 때쯤 씻으면 되었으니 싫은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몸 편한 재택이 기껏해야 얼마나 가겠나 하는 생각에 집에 머무르는 그 시간을 나름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겼던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 재택이라는 것이 3개월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내 몸 안팎에서 발산되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택을 해서 힘들다는 말이 사치스러운 불평으로, 그저 재택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약 올리는 발언쯤으로 들릴까 봐 마음껏 불평조차 못하다 보니 화가 쌓이는 것 같았다. 혼자 골방에서 노트북만 보고 일을 하고, 혼자 조용히 밥을 챙겨 먹고, 또다시 돌아서서 말 없는 노트북과 씨름을 하는 동안 몸은 움직임이 전에 비해 1/10이 줄었고, 말수는 1/100이 줄었으며, 짜증은 반대로 100배가 늘어났다. 말하는 시간이 적으니 회의를 할 때, 논리적으로 말이 잘 나오지 않았고 허리와 목의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홈트레이닝이랍시고 뭔가를 하지 않고서는 힘이 들었다. 독방에 갇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으니, 하나의 생각에 꽂히면 그 이상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 어려웠다. 회사에서는 오고 가다 듣는 사람들의 대화, 정 힘들면 친한 직원에게 찾아가 커피 한 잔 하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다 건지는 이야기, 옆에 앉은 팀장을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하며 내 머리 밖 생각들을 수집할 수 있었으나 이게 막히고 나니 기획자로서는 한없이 답답하고 조급했다. 성과는 나오지 않았고, 아이디어는 반려되었으며 그로 인한 좌절감은 다시금 짜증으로 태어났다.


요즘 집에서 혼자 일하는 동안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욕을 한다. 누군가 몰래카메라를 달아놨다면, 와 이 여자 왜 이렇게 욕을 많이 해 라며 고개를 저었을지도 모른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이다. 인상을 찌푸린 채 일을 하다 보니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갔다 거울을 보면, 내 인상이 어쩌다 이렇게 못생겨졌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다 보니, 남편이 귀가했을 때도 인상이 빨리 펴지지 않는다. 남편이 이유도 없이 내 눈치를 볼까 억지로 다시 얼굴을 핀다. 


그러다 며칠 전, 마음을 터놓는 친구 하나가 함께 재택근무를 하자며 찾아왔다. 그 친구는 그 주에 그 날 딱 하루 재택을 하는 것이었는데, 고맙게도 늦잠 잘 기회를 포기하고 오전 일찍부터 우리 집까지 와주었다. 일이 너무나 바빠 친구가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부엌에 그리고 친구는 서재에 앉아 하루 종일 각자의 일만 하다가 점심을 함께 했고, 또다시 퇴근까지 조용히 일했다. 저녁 6시까지 우리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나눈 대화는 고작해야 20마디, '노래 틀어도 돼?', '과자 줄까?' 정도였지만. 나는 누군가 내 옆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는, 그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탓인지, 평소와 다르게 마음이 편안했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건, 그것이 내가 선택한 시간일 때이다. 사람이 고플 때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은 고문이다. 왜 프리랜서들이 혼자 집에서 일하는 게 어려워 공동작업실에 가고, 공유 오피스를 찾는지 알겠다. 왜 적막한 독서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이 시국에도 스타벅스를 꾸역꾸역 찾아가 공부를 해대는지 알겠다. 나는 참 별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친구가 다음 주에 또 재택을 하러 온다고 한다. 그 약속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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