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독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맘고생을 심하게 하는 동생 하나가 술을 마시다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나 지금도 좀 망했긴 한데.. 그때 미련 못 버리고 계속 시험 쳐서 승무원으로 붙었어도 결말이 비슷했겠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허탈한 마음이 많이 드는 말이었다.
최근에 쏟아지는 경제 기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닥치는 어려움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동기와 후배들 중에 항공사와 여행 업계에 간 사람들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했던 곳이 하나투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투어는 아주 짧게 다녔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애정 같은 것이 느껴져서인지 작금의 사태가 많이 슬프다.
당시 그 회사를 1년만 다니고 나올 때 부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XX 씨, 우리 회사가 월급이 많이 작긴 하지만, 그건 여행 업계의 특성이니까.. 그래도 우리 회사는 회장님이 직원들, 대리점 식구들을 가족처럼 생각하시는 분이라 법을 어기는 정도로 잘못하는 것만 아니면 모두 정년퇴직까지 일할 수 있는 좋은 회사예요. 요즘에 정년퇴직까지 일할 수 있는 회사는 공기관 밖에 없는 거 알죠? XX 씨가 이런 점도 고려해서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업계 1위'라는 것은 일정 수준의 자신감, 그리고 안정감 같은 것을 주기 때문에 경기가 좀 어려워도 회사가 망할 것이라거나 내 목숨이 위태롭다거나 하는 두려움을 체감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하나투어가 부장님 말씀대로 오래도록 직원들이 정년퇴직까지 일하는 곳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확신'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아니, 얼마나 거만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5G가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자리를 못 잡고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예상치도 못한 수준의 또 다른 혁명을 일으킨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산업들이 1년 사이에 와르르 무너지고, 갈길이 멀다고 생각했던 산업들이 갑자기 새로운 혁명의 파도를 타고 날아오른다. 늘 해왔던 대로 공부하고, 예상했던 미래를 준비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면이 막힌 우물에 갇히고 만다. 우물을 나오려면, 여태껏 해보지 않았던 방법이 아니고서는 안 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란 게 별로 없다.
'힘내 다 잘 될 거야' 와 같이 공기 중에 흩어지는 말은 주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저 동생의 말을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그리고 함께 잔을 부딪히며 시원하게 술을 마셔주는 수밖에.
함께 마시면 그토록 달았던 술이 요즘은 어쩐지 많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