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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Dec 12. 2020

음악을 들을 시간


대학 시절 내가 정말 사랑했던 순간은 마지막 수업을 마친 뒤, 집까지 가는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을 때였다. 지하철을 타면 10분 정도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었지만, 한강 대교를 지나는 다소 어두운 조명의 버스에서 캄캄한 밖을 바라보면 듣고 있는 노래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직장인들이 야근 뒤 택시에 몸을 싣고 반짝대는 한강을 지나면 이런 느낌일까,


'너 오늘 하루도 부지런히 잘 보냈다. 이제 우리 편안한 집으로 가자'


직장인이 된 이후로 어쩐지 그 소중했던 시간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졌다. 퇴근길 1시간은 업무의 연장으로 계속 이메일을 확인하고 처리하느라 마음이 분주했고, 출근길 1시간은 눈에 잘 그려지지 않는 무언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뉴스를 읽고, 강연을 듣다가 집중이 안되면 외국어 라디오를 틀어 놓았다. 뭐라도 도움이 되는 것들을 귀에 꼽고 있으면 머리에 들어가겠지 하는 밑바닥의 몸부림이었지만 중간중간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에 답을 하다 보면 물론 그 마저도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이건 머리에 들어올 리 없었다.


집에 와 집안일을 하고, 밥을 먹고, 굳어지는 몸뚱이를 위해 잠시 산책을 하고 다시 돌아와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시간을 쪼개 하다 보면 어느덧 자정이 다가온다. 온전히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은 주말에 억지로 시간을 빼야지만 생긴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보니 내가 듣는 음악은 한없이 편협해졌다.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듣다가,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 꽂히면 그 음악을 질릴 때까지 듣게 되었다. 가끔 집안일을 할 때 유튜브의 힘을 빌려 누군가 이미 컬렉션을 만들어 놓은 인디음악이나 재즈음악 모음 따위를 들으며 '아 이 노래 참 좋다...'라고 위로를 받지만 그 어려서처럼 그 노래의 가사를 달달 외우기는커녕 가수가 누구인지, 곡의 제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노래를 흘려보낸다.


왜 부모님이 그렇게 젊었을 때 들었던 노래를 나이 들어서도 똑같이 반복해서 듣는지. 왜 우리 아버지는 맨날 나훈아의 '사랑'만 부르고, '부모'만 듣냐고. 울부짖는 나훈이 목소리가 지겨워 듣기 싫다고 했던 내 어린 시절이 서글프다.


계속해서 김동률과 이적의 오래된 노래들을 맴돌다 어렵사리 샘킴이나 권진아를 들으며 요즘 노래도 좋은 것이 많구나 생각하다가, 내가 너무 나이 든 아줌마처럼 느껴질 때면 박재범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핫, 저 남자는 어찌 저리 노래도 몸도 목소리도 섹시한 것인가' 감탄하는 정도로 만족한다.

 

온전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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