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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Dec 14. 2020

명품숍 가는 여자


황금 같은 일요일을 난생처음 명품 브랜드 매장을 전전하는데 썼다. 백화점이나 아웃렛을 오다가다 할 때 샤넬이나 루이뷔통 매장 앞에 길게 늘어져있는 줄을 볼 때 '다들 인내심이 대단하구나 나는 맛집도 10분을 기다리기가 힘들어 쩔쩔매는데' 하고 생각했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나도 줄을 서는 날이 오고 말다니 괜히 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첫 명품 쇼핑의 목적은 시어머니를 위한 선물을 사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신혼 여행길에 면세점에서 작은 선물 정도를 하나 사드렸겠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면세점은 코빼기도 구경하지 못했고, 대신 그냥 백화점 명품관을 오게 된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인생에 처음 갖게 되는 명품 제품이라길래 어떤 걸 사드려야 할까 고민하다 예전에 중국 여행을 갔다가 짝퉁 루이비통을 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기억하고 이번엔 진짜 루이비통을 선물해 드리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래도록 줄 서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소곤소곤 잡담을 나누었다. 남편은 집이 지금보다 훨씬 형편이 좋지 않았을 때 누나가 힘들게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중국 여행을 갔다가 장난 삼아 짝퉁 태그호이어 시계를 사준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명품에 관심이 없던 아니 관심 가질 수 없던 때에 그게 무슨 브랜드 인지도 모르고 그냥 차고 다녔는데 어느 날 학교 선배가 물었단다. "야 너 그거 뭐야, 진짜야?" 하도 캐묻는 통에 집에 가서 찾아보고나서야 태그호이어가 실제로 얼마나 비싼 브랜드인지 알게 되었다. 짝퉁이라 쪽팔린다는 생각보다, 이 정도면 예쁜데?라는 생각에 그 이후에도 열심히 그 시계를 차고 다녔는데 역시 중국 제품이라서인지 1년도 안되어 시계는 고장나버렸다. 

"여보 시계 사고 싶으면 사~ 하나 사줄게"라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는데, "아냐 필요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와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짠순이 성향을 버린다 버린다 했지만 참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시어머니에게 선물한 것은 몇 백만 원짜리 가방이 아닌 아주 작은 지갑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내가 올해 몇 번이나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 오늘에서야 주문을 마친 디지털 피아노와 값이 같다. 내가 피아노를 살 때 설레던 그 마음만큼 선물을 받은 시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에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아들이 돈 번지가 10년이 넘었어도 이런 거 한 번도 안 사주더니 딸이 생기고 처음 받아보는구나 고맙다고 하시는 말씀에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명품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나도 엄마에게 명품을 선물한 적이 없다. 심지어 가끔 그런 브랜드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게 다 무슨 의미냐, 그 돈으로 우리 못 가본 곳 여행이나 한 번 더 하자고 이야기만 했었다. 나도 참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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