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나는 결혼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기 싫다가 아니라 못할 것 같다였던 이유는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을 꿈꿔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한 번도 명쾌하게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큰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인지 운명인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딩크의 삶을 살고 있지만 문득문득 남편이 걱정스럽다. 남편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을 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거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남편의 말을 빌리면)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딩크라는 말은 그들을 단숨에 자극시킨다.
A: 지금은 아직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지, 4년 5년 지나면 분명히 갖고 싶어 질 거야.
B: 늦어서 땅 치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난자 냉동해놔.
C: 딩크라는 거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종족 번식인데, 게다가 우리나라 출산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데 건강한 가임기 여성들까지 임신을 안 하면 나라의 존폐도 위태로워진다고.
D: 부부 사이에는 땔레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 같은 게 필요해. 그게 자식이고.
E: 70, 80되고 아파서 병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없으면 어떡해?
F: 야, 손주 보여드리는 게 부모님한테 효도지. 다른 게 효도겠어?
(또 한 번 남편의 말을 빌리면) 내 주변엔 반대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회사에는 딩크족들이 워낙 많아 그들에 비하면 나는 그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내기다. 그 부부들의 속사정이야 내가 알리 없지만 같은 형태의 가족을 꾸려 나보다 오래 살고 있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의지가 된다. 마흔이 코앞인 시점에 친한 친구들의 2/3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
일이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친구.
본인의 삶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결혼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친구.
결혼에 수반되는 오만가지의 갈등과 책임을 다 할 자신이 없다는 친구.
결혼은 하고 싶지만 결혼하고 싶은 상대를 못 만날 것 같다는 친구.
나머지 친구 중 한 명은 돌싱 2년 만에 다시 재혼을 한 뒤 딩크로 살고 있으며
또 한 명의 친구는 불과 몇 시간 전 충격적인 혼전 임신 소식과 아이를 혼자서라도 출산하겠다는 결심을 선포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출산한 자발적 미혼모 사유리의 이야기를 보며 그녀의 결심을 열심히 응원하던 내가 혼전 임신으로 생긴 아이를 지울 수 없어 기어코 출산하겠다는 친구에게는 정신이 나갔냐는 둥, 다시 생각해보라는 둥 노파심에 잔소리만 해댄다. 딩크를 나무라는 남편의 친구들을 향해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에게 대도 않는 조언을 한다'라고 화를 냈는데 나는 무슨 잣대로 친구의 출산 결심을 나무랐던 걸까.
어차피 평범이라는 건 없다. 우리는 기준선을 구분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 선택하고 살아가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