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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Dec 28. 2020

피부과 방문 일기

aka. 치과보다 더 무서운 피부과 


본래 타고나기를 좋은 피부는 아니었지만, 올 들어 양쪽 뺨에 자꾸만 보기 싫은 뾰루지들이 뚜둑 뚜둑 생겨나기 시작했다. 집에만 박혀 있어서인지, 올해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아니면 나이는 들어가는데 내가 관리를 1도 안 해서인지. 사실 피부가 나빠지는 이유야 생각해보면 열두 가지가 넘었다. 뭘 좀 해야 하나? 화장도 너무 안 먹고 점점 더 보기 싫은데.. 싶다가도 어차피 좋은 피부는 뭘 해도 좋고 좋지 않은 피부는 황금을 쏟아부어도 좋지 않다는 생각에 그냥 또 방치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스크를 쓴 이후로 마스크가 닿는 부분의 뺨의 문제가 더욱더 극성을 부리는 것 같았다. 이놈들을 더 놔두면 당장 4주를 앞두고 있는 원빈 & 이나영 발꿈치 향기 정도 흉내 내는 작은 결혼식에 내가 원래보다 더 못생겨 보일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역시 인간은 위기감이 엉덩이 뒤꽁무니까지 와야 움직인다.) 그래서 평생을 피해온 피부과를 큰 맘먹고 방문했다. 


피부과의 리셉션을 지키는 간호사와 상담사 직원들은 성형외과에 있는 분들처럼 곱고 아름답다. 어찌나 피부가 그렇게 다들 백옥 같은지, 찰랑찰랑 빛이 난다. 오랜만에 그렇게 좋은 피부를 보고 있으니, 음 그래 내가 너무 오래 문제를 방치했군 하는 반성이 살짝 들다가 '아니다 저 사람들은 원래 유전자가 대단히 좋은 것이지! 저런 사람들을 리셉션에 두는 것도 다 장사 속셈이다!'라고 마음을 비꼬았다. 이럴 때마다 늘, 애정 하는 송혜교 언니와 고현정 언니도 한 달에 피부에만 천만 원 넘게 쓴댔어 라며 그만큼 쓸 여력이 없는 내 능력을 한탄도 해본다.

의사는 마스크로 인한 피부 염증이 오랫동안 방치됐다며 나를 나무랐다. 마스크 한 번 쓴 것 특히 화장품이 묻은 것은 재활용하면 안 된다고 깨끗한 마스크만 쓰란다. 뾰루지를 잡아 뜯은 흔적도 나무란다. 나무라는 말들이지만 워낙 친절하고 인상이 좋아 의사 말에 그냥 다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하게 된다. (이 병원이 리뷰가 좋은 이유가 있었네...) 의사는 피부라는 게 염증이든 뾰루지든 여드름이든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건 아니니 천천히 약 먹고 연고 바르면서 지내보잔다. 그렇게 나를 보내려기에 마음이 급해 '아니요 선생님 제가 평소 같으면 천천히 해도 괜찮은데, 이 피부면 지금 4주 뒤 제가 결혼식이 있는데 화장이 안 먹을 것 같아요...'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결혼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의사의 눈에서 빛이 난다. '아니 결혼식이 4주 뒤라니요! 아하...... 너무 늦게 오셔서 그때까지 레이저를 하고 뭘 해도 크게 가시적 효과는 없을 텐데, 최대한 있는 염증은 가라앉히고 매끄럽게는 해봅시다' 하고 굳은 파이팅을 외치신다. 의사는 2번의 레이저와 염증 치료, 그리고 4주간의 꾸준한 약물 치료와 연고를 권했고 이 모든 것은 할인에 할인을 더했지만 결국 50만 원이라는 목돈으로 청구된다. 엊그제 영상 하나를 촬영하고 50만 원의 아르바이트비를 받았는데, 기가 맥히게 그 돈을 알고 딱 50만 원을 청구한다. 돈은 내 통장에서 숨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트러블성 얼굴에 갖다 박힌다. 젠장......!


난생처음 당해본 압출이라는 것에 온몸이 찌릿찌릿 눈물이 난다. 많이는 없다고, 고작 압출 6개 하는데 왜 이렇게 아파하세요- 원래 볼이 제일 안 아픈 거예요 라는 간호사 언니의 말이 밉다. 나는 너무 아프다. 그러나 압출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위에 염증약을 바르니 얼굴에 불을 내는 것처럼 화끈거리고 따갑다. 피나는 부위에 맨소래담을 바르는 것과 똑같다. 또 한 번 눈물이 핑 도는데 다행히 얼음찜질로 진정시켜 주었다. 피부에 이런 걸 해도 괜찮나? 오히려 피부에 독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슬슬 들기 시작할 때쯤 의사가 레이저를 준비한다. 레이저는 사실... 적외선 찜질방에서 쬐는 그 정도의 빛을 오랫동안 쬐고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심장이 멈춘 사람에게 충격을 가하는 그 기계처럼, 뭔가를 '팡!' '팡!'하고 쪼는데 그때마다 아파서 온 몸이 전기 충격을 맞듯이 팍 하고 튀어 오른다. 이걸 6번 정도를 하는데, 2번쯤 하니 이제는 기계를 갖다 대기도 전에 온 몸이 쪼그라든다. 마치 전기 고문을 받는 느낌이다. 이렇게까지 하고 나니 같은 치료를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다. 돈은 이미 완납했으니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다.


친구들에게 이 피부과 방문기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아프고 무섭다는 데는 한 마디도 첨언을 안 하고, 드디어 네가 뭔가를 하는구나, 우리는 네가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결혼식 치를까 봐 걱정을 했다, 잘했다 날개야!!! 이러면서 칭찬을 해댄다. 칭찬을 받으니 또 뭐 별 수 없다. 왜 그렇게 피부과 의사들을 하려는지 알겠다. 레이저 몇 방 쏘는 것 2번에 약 주는데 50만 원이라니. 내 평생 다시 피부과를 방문할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진짜 아파서 죽는지 알았거든 근데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잖아. 여보도 해봐! 여보는 압출할 것도 많으니까 더 아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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