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잠자리가 예민하여 빨리 잠들지 못하고, 늘 오만 꿈을 다 꾸다가 몇 번씩 화장실을 가고 싶어 깨곤 했다. 어쩌면 이건 유전 인지도 모른다. 나보다 열 배는 더 예민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제나 피곤에 찌들어있는 오빠.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잠에 있어서는 예민 보스들의 집합이다.
유독 올해는 그 잠이 더 어렵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몸의 움직임이 전에 비해 절반도 안되기 때문일 테지. 내 몸뚱이는 강아지로 치면 코카스파니엘이나 비글과 같아서 하루 종일 땀을 내고 놀아주지 않으면 병든 사자처럼 아프고 처진다. 10분은커녕 5분 이상을 가만히 누워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언제나 집안에서 할 일을 찾아 분주하게 돌아다니지만 9개월의 재택 기간 동안 이런 소소한 움직임이나 홈트레이닝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나는 재택을 하기 전보다 더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일을 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적어도 출퇴근에 소비되던 시간만큼은 늘어나야 정상인데 현실은 반대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을 하다, 밤에 잠들기 전까지도 자꾸만 마지막 이메일까지 꺼내어본다. 메신저는 끊임없이 울리고 이성은 나에게 '대답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지만 무언지 모를 압박이 다시 나를 또 채팅창으로 이끈다. 24시간 온라인에 접속해 있어야 한다는, 실시간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압박감. 오프라인으로 일을 할 때보다 티가 잘 안 나니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나 성과물을 전보다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쉬지 못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몸의 에너지를 다문 10kcal도 안 썼음에도 온몸이 방전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몸을 억지로라도 끌고 나가지 않는 날에는 어김없이 새벽 절반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누군가는 꿈이 무의식 중에 떠도는 생각이 나타나는 거라는데 내가 꾸는 10개 중의 9개의 꿈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무의식 중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생뚱 맞거나 소름 끼치게 구체적이다. 내 무의식이란 놈은 대체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는 꿈이 우리에게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이란다. 미신 같은 이야기지만 무의식 중에 하는 생각이 나타난다는 말보다는 신빙성이 있다. 나보다 엄마에게 이런 일이 훨씬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친척 중에 누군가는 엄마가 어려서부터 신기가 있던 것 같다는데 나로선 엄마의 과거를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엄마의 꿈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잘 맞다. 해외 생활을 할 때 아파서 끙끙 앓는 밤이면 엄마에게 다짜고짜 '나래 아파?'라는 전화가 온다. 아프다는 말을 내뱉은 적이 없는데 내가 아프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엄마는 어제 꿈속에 내가 나와 아프다고 울었단다. 엄마는 우리가 달봉이를 잃은 날도, 누군가 돌아가신 날도, 아빠에게 사고가 난 날도 모두 관련된 꿈을 꿨다. 물론 좋은 꿈도 기가 막히게 현실에 맞게 꿔댄다. 이런 꿈들을 그냥 무의식 중 떠도는 생각이라고 하기엔 찜찜하다.
결혼 후에는 먼저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남편의 성격이 무디고 기복이 심하지 않은 건 모르긴 몰라도 '잘 자는 것'이 9할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피곤하든 하지 않든, 몸을 하루 종일 움직이든 아얘 움직이지 않든, 배가 부르든 안 부르든 잘 자는 사람. 즉, 남편에게는 잘 자는 데 필요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등을 붙이면 10초 만에 잠에 떨어지고, 잠자기 전 맥주를 한 사발을 마셔도 새벽에 화장실을 가느라 일어나는 일이 없다. 코를 너무 골아 내가 여러 차례 깨워도 다음날이 되면 내가 깨웠다는 것, 자신이 일어나서 미안하다며 몸을 돌아 누웠다는 것은 기억에서 하얗게 지워져 있다. 그런 남편이 부럽고 신기해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남자, 꿈을 꾸기는 할까. 꿈을 안꾼 것 같다는 너는 무의식 중에 하는 생각이 없는 걸까. 꿈이 이 사람에게 주고 싶은 암시 같은 건 없는 걸까.
연애 초기, 자신이 럭키가이라며 '운이 얼마나 좋은지'를 증명하는 경험담들로 내게 웃음을 주며 꼬시더니 그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나 보다.
잘 자는 건 정말로 큰 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