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건 다 엄마 때문 일거다. 엄마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특히 편지를 쓰는 것을.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가끔 그 도시락 통 안에는 엄마가 쓴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사춘기랍시고 이래저래 입이 한 사발 나와있는 딸을 보듬으려는 엄마의 노력이었다.
"오늘은 아침에 학교 가는데 표정이 좋지 않네. 요새 힘드니? 힘내 우리 딸"
"네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는 청치마 못 사서 서운했지. 우리 딸 엄마 조금만 이해해 줘. 우리 집 형편이 많이 좋지 않으니까 엄마도 아빠도 많이 못 사주는 마음이 많이 아파. 조금만 같이 서로 힘내자"
부족한 건, 잘못한 건 나인데 엄마들은 언제나 미리 져준다.
그래서 밥뚜껑을 열기도 전에 닭똥 같은 눈물을 참방참방 쏟아낸 적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식탁 위에 엄마가 미리 차려 놓은 밥상과, 그 옆에 빼꼼히 머리를 세운 쪽지가 있었다. 별다른 말은 아니었다. 그저 '밥 차려 놨으니 잘 챙겨 먹어. 엄마 일 갔다 올게~' 같은 인사였다. 학교 끝나고 아무도 없는 빈 집에 귀가하는 게 허전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 이유는 모르긴 몰라도 그런 엄마의 메모 덕분일 것이다.
엄마랑 나는 그렇게 종종 말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나 아주 사소한 인사들을 공책을 북 찢거나 굴러다니는 메모장에 적어 건넸다. 나는 그게 너무나 좋았다.
신박한 정리 신애라보다 버리기를 더 잘하는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 나에게 남긴 글이다. 수년간 엄마로부터 받은 편지와 쪽지, 친구들과 나눈 교환 일기장,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나 카드들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커다란 편지 상자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아주 가끔 그것들을 들춰 볼 때면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고 우리가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 느낌은 엄마의 편지를 읽는 것 다음으로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남자 친구들을 사귈 때마다 '이번엔 무슨 선물을 줄까'라는 질문에, 언제나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답 '편지 써 줘'를 주었다. 고가의 명품이나 실용적인 물건들보다 내게는 기록으로 남겨지는 이야기들이 훨씬 가치 있다. 내 인생이라는 게 워낙 사소하고, 보잘것이 없어서인지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흩어지는 공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내가 나이 들어 기억하는 이야기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질까 봐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나라도, 내 인생을. 그리고 그 안의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또 들추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