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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Aug 13. 2021

조상님, 이게 최선입니다

    들 숨 한 번에도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였다. 시장 상인들도 무더위에 지쳐, 의자에 앉아 의욕 없이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그런 시장 안을 빨빨 거리며 다니는 건 금옥뿐이었다. 빠르게 걷다가, 멈춰 섰다가를 반복하며, 양손에 바리바리 들고 있는 봉지를 야무지게 움켜쥐고 또 다른 가게로 두 발을 타닥타닥 옮기는 모습이 장을 본다기 보단 중대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 같았다. “아이고, 더워 죽겠는데 고마 얼른 사고 가자! 이제 됐다. 그 정도문!” 땀에 티셔츠가 흥건히 젖은 경훈이 뒤에서 소리를 지르던 말던 금옥은 마지막 식재료까지 하나하나 살피고 골랐다. 소고기 두 근, 국에 넣을 문어 한 마리와 홍합, 새우, 박, 그리고 생선과 방아 이파리, 사과, 배, 밤, 대추까지.  


  식재료 값은 매년 눈에 띄게 올라 제사상 한 번에 들어가는 돈이 어느덧 2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반대로 제삿날 경훈의 집에 찾아오는 형제들의 숫자는 조금씩 줄어 이제는 5형제 중, 손아래 동생 내외만 매번 오고, 어쩌다 한 번씩 셋째가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제사상에 보태라며 5만 원, 10만 원씩 누군가 보태던 것도 어느 날부턴 소식이 없었다. 누구는 땅 파서 제사상 차리나, 그럴 거면 진작 와서 음식 하는 데 손이라도 보태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금옥은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을 뭐라 한 적이 없었다. 매번 금옥은 묵묵히 상을 차리고, 식구들을 기다리고, 누구든 오는 사람에겐 음식을 나눠주었다.   

   집에 도착하니, 딸 선영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한 이후에도 2주에 한 번씩은 오는데도 올 때마다 반가웠다. 

-왔나, 차 안 막히드나 

-세상에 엄마는 무슨 재료를 이래 많이 사 왔나. 차는 하나도 안 막히드라. 와 근데 오늘 이래 더운데 집 앞에 마트를 가지 시장까지 갔다 왔나. 

-마트는 영 파이다. 방아깨비 이런 건 살 수도 읎고 두 배는 더 비싸다 아이가. 

-아이고 엄마는 작은 아버지들도 오기 싫다고 자꾸 내빼는데 뭐한다고 혼자 이래 사서 고생을 하노. 음식도 맨날 남는데. 이번까지만 딱 하고 하나로 합치든지 그만해라 이제. 그 정도면 조상들도 잘했다고 엄마 다 인정해줄끼다. 

-니 제사 없는 기독교 집에 시집갔다고 엄마한테 또 잔소리 4절까지 할라카제. 1절만 해라 1절만. 

-엄마는 딴 건 안 그러문서 이런 건 와이래 고집을 부리는지 내 도통 이해가 안 간다. 우리 집에 제사 1년에 7번 있다카문 건욱이 색시도 아마 결혼 안 한다 할 걸? 요새 애들이 그런 거 얼마나 따지는 줄 아나?  

-니가 몰라 그렇지 조상을 편히 잘 모셔서 우리 가족이 이래 무탈하게 잘 사는기다. 느 아부지 형제들 봐라. 제사도 안 오고 하니까 대번에 안 좋은 일이 있다 아이가. 

-엄마, 진짜 조상 덕 보는 사람들은 제사 안 지내고 해외여행 다닌다는 말 몬들었나 

-참 나. 다들 지금이나 그래 잘 사는 줄 알지. 화가 쌓이문 큰 봉변이 있을지 미래를 그래 우예 알겠나. 


  금옥이 유독 이번 제사상을 신경 쓰는 데는 제법 큰 이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아들 건욱이 결혼할 여자를 보여주러 진주에 내려오겠다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이 마흔이 가깝도록 여자 친구는커녕, 여자 코빼기도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것 같은 아들이라 이놈이 남중, 남고, 공대를 나와서 그런가 아니면 일이 너무 바쁜가 싶어 온갖 걱정을 하다 포기를 한지도 좀 되었을 즘이었다. 건욱의 나이가 서른 너어살 될 때까지만 해도 금옥은 얼굴만 보면 서울 아이들은 어른도 공경할 줄 모르고 지 밖에 모른다 하니 경상도 아를 만나보라는 둥, 우리 집보다 너무 잘 살면 니가 눈칫밥을 먹으니 형편이 비슷한 곳을 바라보라는 둥의 얘기를 했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친구들이 둘째 손주를 보았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자 이제는 그마저도 다 필요 없으니 그저 평범하기만 하면 아무나 상관없다 했다. 그래서 나중에 경훈이 아들 색시감이 어디 아가씨인지, 나이가 몇 인지 그런 것도 하나 안 물어봤냐고 핀잔을 줄 때 단단히 대답했다. “지 둘만 잘 맞다카문 됐지 다른 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따 밤에 조상님한테 아들 결혼 자라 살피달라고 기도나 열심히 잘 하소.”  


                                                                                           *


 -어머니, 절에 가는 거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제가 여기 와보자고 했는데, 어떠세요?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여기가 길이 예뻐서 유명하대요.  

-그래, 절이 참 크고 좋네. 꽃도 많아서 알록달록하니 이쁘고. 

-맞아요. 절 이렇게 자연 속에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어머니, 절하고 오시겠어요? 아, 저 현금 있는데 드릴까요?

-응 절 해야지. 내도 돈 가져왔다. 저기 대웅전에 가 가지고 절 한 번 하고 올게. 

   매번 경훈과 둘이서만 절을 드나들다 대웅전 밖에 남편과 아들이 조근대는 소리가 들리자 마음이 들떴다. 귀찮다고 생전 절에는 따라나서지 않던 놈이 산 중턱의 절까지 군소리 없이 온 걸 보면 민정이란 아이가 조금 더 세나 싶었다. 민정이는 기차역에서 처음 경훈과 금옥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낯을 가리지 않고 이동하는 내내 말을 잘 붙이고 싹싹한 게 금옥의 마음에 들었다. 몇 년 전 아들 장가를 보낸 손아래 올케가 ‘우리 며느리는 착하긴 한데 말도 한마디 없고 맨날 표정이 뚱해서 영 재미가 없다니까요.'라고 불평하던 게 생각이 나서 살짝 웃음이 났다.  


   절에서 내려와 식사를 하는 동안 건욱은 열심히 민정이 얘기를 했다. 서울 출신인데 외국 생활을 오래 했고, 지금은 전 세계에서 1위 하는 애플이라는 회사에서 일을 한다, 형제는 결혼한 오빠가 하나 있고 부모님은 은퇴하시고 전원생활을 하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서울이 워낙 집 값도 비싸고 생활비도 많이 들어 혼자 벌어서는 힘이 드는 데다 민정이 연봉이 저보다 높아서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이는 어떻게 되냐는 묻자 민정이는 씩씩하게 서른여덟이란다. 건욱보다 고작 한 살이 적어 시골로 치면 노처녀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축일 테지만 요즘 서울 사람들은 그 정도 나이에 결혼을 한다 하니 괜히 많다, 적다, 빠르다, 늦다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잠시 정적이 생긴 틈을 타 소주 몇 잔에 얼굴이 발게진 경훈이 말을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언제나처럼 자신의 인생사 중 가장 좋아하는 70년대 이야기를 읊었다. 금옥은 골백번도 더 들은 낡아빠진 내용이라 낡아빠진 지겹기도 하고, 처음 만난 민정이가 지루해할까 싶어 몇 번이나 경훈에게 그만 얘기하라 했지만 민정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맞추며 듣는 통에 경훈은 신이 나 멈추질 않았다. 연신 침을 튀기며 마지막으로 과수원에서 자다 뱀에 물린 이야기를 끝내자 건욱이 민정에게 물었다. 

-민정아, 아부지 이야기 다 알아 들었어? 

-아, 음.. 그게.. 아버지 사실 아까 그 ‘철라무 함시로..’ 하시는 부분부터 잘 못 알아 들었어요. 

-에라이! 사투리부터 가르치야겠네! 하고 경훈이 테이블을 탁 치며 웃는 통에 나머지 셋도 따라 웃으며 식사를 끝냈다. 


                                                                                          *


   어느덧 봄이 오고 마파람이 불었다. 금옥은 이런 날 절에 가만히 앉아 바람맞는 걸 제일 좋아했다. 바닥 여기저기 피어있는 들꽃과, 달콤한 향을 뿜는 귀룽나무, 그리고 바람에 둠 실대는 연등들이 지나가는 시간을 잊게 해 주었다. 수 백개의 연등 중 오늘은 금옥의 것도 있었다. ‘아들 건욱, 며느리 민정이와 행복하게 잘 살게 해 주세요.’ 큰 맘먹고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큰 연등을 주문했다. 오래도록 기다린 바람이라, 그깟 몇 백만 원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 사이 경훈은 동네방네 예비 며느리가 세계에서 제일 큰 애플에 다닌다고, 외국말도 서너 개나 할 줄 안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하루는 불알친구 제철이가 바다에서 주꾸미를 잡아 왔다고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았다. 아내들이 주꾸미를 손질하는 동안 경훈은 또 민정이 얘기를 시작했다. 제철이 애플이 뭐 하는 거냐고 묻자, 경훈은 우리나라 삼성전자보다도 더 큰 미국 회사인데 시골에만 갇혀 살아 무식하다고 성을 냈다. 그러자 제철이는 삼성이고 애플이고 착하고 예쁜 며느리 얻었으면 됐네, 이제 아들한테 숙제도 다 넘겨주고 금옥 씨랑 놀러도 좀 다니면 되겠네, 참 잘됐다 하고 경훈을 달랬다. 


                                                                                          *


-일하는 애들 괜히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놔두이소. 낸주 만나서 얘기 하문되지. 지금 밤 열두 시가 넘었다 아입니까. 

-아이다. 이것들이 결혼 한지 1년이 넘었는데 언제 제사 인지도 모르고, 지낸다 캐도 전화 한 통 할 줄도 모르고 영 버릇이 없다 아이가! 몰라서 그라는거문 이제 가르쳐야지 않겠나. 생각이 있으문 사진 보고 깨닫는 게 있겠지. 

경훈은 아들에게 카톡으로 제사상 사진을 보냈다. 그래 놓고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제삿밥에 소주 몇 잔을 더 곁들이고 잠이 들 때까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찍 경훈의 전화가 울렸다. 

-아부지, 카톡을 아침에 봤습니다. 제사 잘 지내셨습니까. 

-니는 임마 엊그제 엄마가 내일모레 제사 지낸다 캤는데 전화 한 통도 없고. 

-아, 아부지.. 아무래도 그거는 아부지와 제가 긴 대화를 좀 나눠야 될 것 같심니다. 

-긴 대화는 무슨 긴 대화.  

-아부지 그거는 나중에 만나서 하시죠. 

-오야, 알았다! 출근해라. 

-예 아부지 이제 출근합니다. 연락 또 드릴게요. 

  그 날 오후 가족 단톡 방이 울렸다. 

-건욱아 생일 선물 잘 받았다. 민정이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신혼은 아직 좋나? 

-어. 민정이가 깔끔하고 요리도 잘해가지고 편하다. 집안일을 민정이 혼자 다 한다. 

-와 니는 안 하는데 

-내가 하면 민정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몬하게 한다. 

-와, 니 진짜 장가 잘 갔네. 나도 우리 남편이 다 하는데. 우리가 아버지 닮아갖고 배우자 복이 있는 갑네.  

금옥도 메시지를 쓰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냥 카톡창을 닫았다. 경훈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경훈이 금옥에게 내일 제사 음식을 줄 겸 건욱 집에 한 번 가보자고 말을 걸었다.  

-그라까. 민정이가 그때 제사 국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 카든데. 그라문 내가 건욱이한테 전화해서 점심 묵지 말고 기다리라 하께.  


   서울로 가는 차에서 금옥은 휴대폰에 있던 사진첩을 훑다가 민정이와 처음 만난 날 절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았다. 민정이는 나무랄 데가 별로 없는 며느리였다. 만나면 언제나 싹싹하고 다정했다. 조카들 생일이 언젠지도 모르던 남동생이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보냈다며 신기해하는 선영이 얘기만 들어도 그랬고, 기념일이라 해봤자 생일에 계좌이체로 10만 원이나 부치는 게 전부였던 아들이 어느 날 뜬금없이 금옥이 좋아하는 분홍색 장미를 백송이나 보내 깜짝 놀라게 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정작 저 둘은 잘 꾸미지도 않으면서 때만 되면 경훈과 금옥에게 옷과 신발 같은 걸 사주는 것도 고마웠다. 묻지 않아도 다 민정이가 하는 일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선영은 그런 건욱이를 민정이 아바타라고 불렀다. 가끔 진주에 내려오면 민정이는 인터넷에서 좋다는 곳을 찾았다고 금옥과 경훈을 집 밖으로 끌고 나갔다. 유명하다는 절에, 계곡이 예쁘다는 산에, 야경이 예쁘다는 카페에. 오고 가는 길에는 ‘어머니 부산에서 목욕탕 하실 때에는 어떠셨어요',’ 아버지 복권 당첨되면 무슨 자동차 사고 싶으세요' 하며 기분 좋게 재잘거렸다. 


   그러나 민정이에게는 절대 넘지 않는 선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만나지 않는 날에는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이 없었고 연락할 일이 있으면 언제나 건욱을 통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가족 단톡 방에 들어오라는 말에 네 어머니라고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며느리도 딸이랑 똑같으니, 너도 나를 아버지라 생각해라’는 경훈의 말에는 ‘아부지 그러면 저희 아빠가 섭섭해서 울다 병나셔서 안돼요~’ 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쳤다. 경훈은 이런 것들이 가끔, 조금씩 신경이 쓰여 금옥에게 구시렁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금옥은 괜히 애들한테 잔소리하지 말라고,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순리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겠냐고 토닥이곤 했다.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 건욱이 마중 나와 있었다. 방문자 차량 등록을 하고 왔다는 말을 하며 차 뒤에 올라탔다. 경훈이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려는 데 뒤에서 건욱이가 경훈의 오른쪽 어깨를 살짝 잡았다. 

-아부지, 할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뭔데? 

-엊그제 아부지 제사상 사진 왜 보내셨습니까  

-그걸 이제야 물어보나. 니는 내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아직도 나하고 니 엄마가 제사를 지내는 걸 보고 니는 아무 생각이 안드나? 

-...

-제사를 당장 다 넘겨받지는 못해도 적어도 언제 누구 제사인지는 다 기억하고 있다가 전화라도 해야 하는거 아이가? 결혼 전에는 혼자니까 그렇다 치도 결혼 한지가 1년이 넘어가문 이제 차차 준비를 해야지 왜 아~무 말이 없노.  

-아부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민정이한테 결혼하자고 할 때 우리는 제사 안 지내도 된다 하고 꼬셨습니다. 명절에는 어차피 부모님 뵈러 가니까 그 때만 조금 도와주면 좋겠다고요. 

-뭐라꼬????? 누구 마음대로 제사를 안 지내도 된다 하고 결혼을 하노? 그럼 민정이랑 니가 안하문 제사를 누가 지내노! 

-아부지 지도 결혼 전에는 명절때 빼고 제사 지내러 한 번도 안 갔는데 갑자기 제사 때마다 내려갈 수 없다 아입니까. 제가 못하는데 민정이가 혼자 하는 것도 이상하다 아입니까. 

-그거는 임마 결혼 전이니까 아직 가장이 아니라서 내려오라고 강요 안 한기지. 결혼하고 나서는 다르다 아이가. 

-아부지 서울에서는 아무도 제사 안 지냅니다. 저한테 시집오면 일 년에 7번 넘게 제사 지내야 한다 카문 어떤 여자가 저한테 시집을 오겠습니까. 제가 장가도 가지 말고 그냥 혼자 늙었으면 좋겠습니까 아부지. 기억 안나십니까, 5년전에 지민이도 그놈의 제사때문에 결국 결혼 안한다 했다 아입니까. 

-하이고 이놈이…..이놈이 뭐라카노. 그렇다고 제사를 안 지낼 수도 없고 방법이 있나. 니 엄마 죽을 때까지 일 시킬 끼가. 그러길래 내가 경상도 아 만나라 캤나 안캤나! 

-서울에 경상도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아부지. 아부지가 죽었다 깨나도 제사 지내야 한다 카문 제가 혼자라도 가서 제사해야지 뭐 별 수 있습니까. 회사는 가야 되니까 평일에 제사가 있으면 다는 못 가고 휴가 쓸 수 있을 때 가겠십니다.  

-니가 혼자 와서 하긴 뭘하노. 음식도 하나 할 줄 모르는 게!  

-민정이는 뭐 제사 음식 할 줄 압니까. 제사 지내본 적도 없는 앤 데 지보다 모르면 더 모르지요. 음식은 살 수 있는 건 사야지 뭐 별 수 있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아부지.    


   셋 사이에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경훈이 고개를 돌려 금옥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일한다고 바쁜 애 억지로 부르지 말라고, 때가 되면 알아서 다 한다던 금옥의 말을 들은 것을 후회하는 눈빛이었다. 평생 싫은 소리 한 번 잘 한 적 없던 아들이 갑자기 이렇게 정면 승부를 걸 거라고 상상을 못 했던 지라 금옥은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속이 부글거리듯 뜨거웠다가, 뜨거운 기운이 드라이아이스처럼 증발했다. 

-그라문 최대한 제사를 주말로 옮겨 지내고. 제일 중요한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큰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제사는 꼭 필요하니까 네 번은 하라카문 민정이하고 내려와서 할 수 있겠나.   

그제야 금옥이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제사를 돌아가신 날에 해야 의미가 있지 주말로 옮기긴 뭘 옮깁니까. 안 하느니만 못한다 아입니까. 놔두소 그냥 내가 할 테니깐. 민정이 기다리니까 그만하고 집으로 올라가입시다. 

-아부지, 어무니 그냥 제가 회사 때리치고, 이혼하고 진주 내려가서 제사 지내고 살까요. 

-이 놈이 지금 심각한 얘기 하는데 장난치나! 니는 이게 장난같제? 시끄럽다 내리라! 


                                                                                    *


-어머니 제사 국 진짜 맛있어요. 박이라는 것도 옛날에 흥부놀부 책에서나 봤지, 처음 먹어 봤는데 무 같기도 한 게 맛있네요. 

민정이는 사정도 모르고 다른 날과 다름없이 웃으며 금옥과 경훈을 반겼다. 제사 음식이 맛있다고 연신 칭찬을 하면서도 이번엔 누구 제사였는지, 이렇게 음식을 하시려면 너무 힘드실 텐데 못 도와드려 죄송하다거나 하는 그런 정작 중요한 말들은 쏙 빼놓는 것 같았다.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어두운 얼굴로 밥을 먹던 금옥은 잠시 수저를 내려두고, 평소였으면 하지 않았을 질문을 던졌다.  

-민정이 느그 할머니도 교회 다니셨나? 원래 제사를 안 지내셨다 카든데.  

-아, 네 저희 친조부께서는 기독교 신자셨대요. 그런데 워낙 일찍 돌아가셔서 저는 한 번도 얼굴을 못 봤어요. 

-그라문 니는 외가에서도 제사를 한 번도 안 지내봤나 

-네 어머니. 한 번도 안 지내봤어요. 외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젊어서부터 쉬는 날 없이 장사를 하셔서 힘들다고 그만두셨대요. 처음에는 음식 가짓수를 서너 개로 줄이고, 나중에는 과일이랑 한과만 놓고 지내시다가 결국 없앴다고요. 외할머니 돌아가시면서도 큰외삼촌한테 마음으로 기도하고 섬기는 게 중요하지 다른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본인들 제사도 지낼 생각 말라고 하셨다네요. 저희 엄마는 가끔 성당에 가서 위령미사는 드리고 오세요. 그저 ‘네' 하고 대답하지 않고,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하는 민정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성가셨다. 누구는 장사 안 하나, 행동이 있어야 마음도 증명이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옥은 그런 생각들을 남은 밥과 목구멍으로 넘겼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남은 국은 안 먹거든 냉동실에 얼려라, 지짐이는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지 말고 데워 먹어라 하며 민정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것들을 대충 가르쳐 주고는 현관을 나섰다.  


   진주로 돌아가는 길에 금옥은 엄마 생각이 났다. 심한 당뇨로 투병하던 중에도 엄마는 마지막까지 제사상을 차렸다. 그때 금옥의 나이가 열일곱, 학교에 가는 대신 아침에는 밭 일을, 오후에는 아버지 전파상 일을 도울 때였다. 밭에서 전파상, 전파상에서 집까지 10킬로가 넘는 거리를 매일 걸어 다니느라 장딴지가 단단해지고 피부는 까무잡잡해져서 두더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그 별명이 제일 싫었다. 예상치 못하게 엄마가 차린 마지막 제사상이 된 그 날, 금옥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 길을 걸어오느라 너무 지친 나머지 지짐이를 부치다 말고 ‘차라리 내도 죽어서 좋은 밥상이나 얻어먹고 사는 귀신이 되는 게 낫겠다.’ 라며 엄마한테 들리도록 투정을 부렸다.  

-금옥아, 엄마가 조상님한테 제일 고마운 게 뭔지 아나?  

-모른다, 나는 하나도 안 고맙다.  

-금옥이 니가 건강하게 잘 자라서, 이래 엄마, 아빠 도와주고 하는 거다. 엄마 때는 애를 셋 나으면 하나는 낳다 죽고, 하나는 키우다 죽는다 캤는데 이래 4남매가 건강하게 잘 자라 준거는 진짜로 귀한 일인기라. 이게 다 조상님들이 우리를 보살펴주셔서 그런 거 아이겠나. 

-조상님이 보살펴 주는 거 맞나. 내는 맨날 이래 힘들고 엄마는 아픈데. 

-엄마만 아프나, 나이 들면 사람이 다 아프제.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밥 안 굶고, 형제들끼리 안 싸우고 하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그게 왜 조상님 덕이고, 엄마 아빠가 고생해서 그렇지. 그리고 무슨 귀신들이 밥을 이래 많이 먹는다고, 전 부치다 내 팔모가지 다 나가겠다 진짜로. 

-하루 종일 천지에서 후손들을 지켜보고 하는 거는 안 힘들겠나. 귀신들도 사람으로 살다가 신명이 되신기라 우리랑 똑같이 감정도 있고 배고픔도 있다 안 하나. 후손이 조상을 푸대접 하문 조상도 후손을 박대하고, 조상이 배가 고프문 그 화도 다 후손한테 가는 거라.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내 자식들한테 화가 가는 건 죽어도 못 본다. 


   제사를 네 번만 하면 어떻겠냐는 경훈의 말을 되뇌었다. 동생이 몇 년 전 밤 12시 제사를 조금만 당기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도 경훈은 우리 편하자고 제사 시간을 당기면, 자꾸 하나둘씩 모시는 마음보다 우리 마음 편한 것들에 욕심이 나기 마련이라고 거절했었다. 형제들과 자신에게는 어느 것 하나 양보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했으면서 자신의 뜻에 어긋나게 걷는 자식에게는 별도리가 없나 보다 싶었다. 금옥도 머리로는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가족 관계가 변하고 그에 따라 전통도 변하고 있다는 것. 명절만 되면 나오는 뉴스,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가족 이야기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가 못했다. 다른 형제들이 모두 자식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것과 달리 금옥의 아들은 서울의 대기업에 취직했고, 딸은 좋은 시댁과 남편을 만나 편안하게 잘 살고 있었다. 금옥이 한 번도 빠짐없이 제사를 정성껏 지냈기 때문이었다. 이제와 조상을 섭섭하게 하면 뒤늦게 자식에게 해가 갈까 두려웠다. 찝찝하고 불안한 마음을 견디는 것보다, 일 년에 일곱 번, 명절까지 아홉 번 몸 한 번 힘들고, 돈 쓰는 편이 나았다. 언제나 마음이 머리를 이기는 이유였다. 


                                                                              *


   몇 달 뒤 다시 할아버지 제사 준비를 위해 경훈과 금옥은 시장에 갈 채비를 했다. 그때 현관문을 열며 건욱이 커다란 박스와 이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아버지 지 왔습니다!” 라며 씩씩하게 들어왔다. 연락도 없이 온 건 처음이었다. 경훈이 니 무슨 일이고 하며 걸어가 건욱의 짐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박스 안을 보곤  “이게 다 뭐…. 이놈이…..” 하는 탄식을 내뱉으며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안에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각종 부침개, 소고기 한 봉지, 과일, 한과. 그리고 그 사이에 꾸깃꾸깃하게 껴있는 제사상 사진이 들어 있었다. 지난번 경훈이 보낸 사진을 인쇄한 것이었다. 


   금옥과 경훈이 등짝을 때리고, 욕을 해도 건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성난 금옥의 얼굴에 대고 ‘어무니 뭐부터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박스 안 재료들을 식탁에 펼쳐 놓고선, 싱크대를 뒤져 커다란 국냄비와 도마, 칼을 꺼내었다. 그리고 양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재료를 씻기 시작했다. 집안일은 민정이가 혼자 다 해서 너무 편하다던 것 치고는 빠르고 자연스러운 행동들이었다. 나서지 말아라, 평범하게 행동해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이 세 가지를 잔소리를 귀가 닳도록 하며 자식을 키웠는데, 지금 아들의 행동은 이 중 무언가를 크게 깨고 있는 것 같았고 그게 무엇인지는 참 분명치가 않았다. 다 큰 아들을 집 밖으로 쫓아낼 수도, 당장 오늘 밤인 제사를 접고 앓아 드러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한 아들이 며느리도 없이 혼자 와 제사상을 차리고 그 상에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아니 조상들이 무어라 할까. 금옥의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차라리 오늘은 둘째 서방님 내외도 안 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와~! 건욱이 웬일로 할아버지 제사에 다 왔네. 잘 왔다! 회사는 휴가 냈나. 니 와이프는 어딨노?

-작은 아부지 잘 지내셨습니까. 와이프는 일하느라 못 왔심니더. 대신에 제가 제사상 다 준비했다 아입니까. 잘했지요? 

-야 니 컸다고 농담도 잘하네. 니가 무슨 제사상을 준비하노. 형님, 건욱이 야가 지짐이 좀 부쳤다고 어깨 뽕이 잔뜩 드가 있네요. 

-건욱이 저놈이 한 거 맞다. 저 놈이 미쳐가지고 앞으로 지가 제사상 차리러 온다 안 하나. 미친놈이다. 

-건욱이가 제사상을 차린다고요? 야 건욱아, 니 색시가 제사 몬지낸다 카드나? 니 우예 그런 며느리를 데리고 왔나 엄마 아빠 안 불쌍하나? 

-에이 작은 아부지도. 원래 처음 제사 때는 남자들도 음식을 하고, 여자들도 술 따랐다 한다 아입니까. 진짜 전통대로 하니까 조상이 더 감격을 하지 않겠습니까. 

-와, 형님, 건욱이 이 놈이 진짜 미친놈이네요. 

-지 양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오겠심니다. 


   둘째가 제사를 끝나고 그새 온데간데 소문을 다 낸 모양인지, 아침부터 금옥의 휴대폰이 여러 차례 울렸다. 형님 어제 건욱이가 혼자 와서 제사상 차렸다문서요 하고 묻는 시누의 카톡에 무어라 대답할까 하는데 살짝 열린 방문 틈새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아들의 곤한 얼굴이 보였다. 민정이 갸가 착하고 순해 보이던데 아닌갑네요, 엄청 독한 애인갑네요 형님 하는 카톡이 또 울렸다. 제사 음식이 맛있다고 두 그릇을 먹던 며느리의 얼굴이 스쳤다. 이번 일로 민정에게 전화 해 니 진짜 제사 지내라 하면 건욱이랑 이혼할 거가, 그럴 거면 그냥 둘 다 앞으로 오지 마라 하고 화를 낼까. 니들이 어려 몰라 그렇지 조상을 잘 섬기지 않으면 그 화가 다 후손한테 돌아간다고 똑똑이 가르쳐줄까 생각했다. 카톡창을 열고 민정이 카톡창을 찾았다. 어느새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었다. 절에서 건욱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제삿밥을 함께 먹고, 주차장까지 배웅 나오며 민정이 말했었다. ‘어머니, 인천에 우리나라 3대 절이 있대서 건욱 오빠랑 미리 답사 가봤는데 진짜 멋있더라고요. 다음에 오시면 거기 꼭 같이 가요! 오는 길에 회도 먹어요.’ 찡그린 조상의 모습 앞에, 환하게 웃는 민정이와 건욱의 모습이 겹쳤다. 금옥은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건욱은 그다음에도 몇 번이나 제사를 지내러 왔다. 그리고 매번 조금씩 일을 더 수월하게 잘했다. 금옥을 닮아서인지 음식 재주는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됐다며 오지 말라고 해도 꾸역꾸역 혼자 오는 건욱에게 경훈은 매번 미친놈이란 소리를 했다. 친척들은 처음엔 대단하네, 불효자네 하다가 금세 익숙해져서 지짐이 맛있게 잘 부쳤네 할 뿐이었다. 건욱과 동갑내기인 조카며느리가 소식을 듣고, 조카와 크게 말다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다음 제사에 조카만 왔다는 소식은 아직 귀에 들리지 않았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몇 초만에 곯아떨어져 코를 고는 건욱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금옥은 자꾸 열일곱 살 그때 자신이 엄마에게 했던 푸념이 떠올랐다. 민정이는 여전히 제사 날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이 없었다. 그러다 다른 날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또 이것저것을 묻고, 웃었다. 그 미소가 금옥의 복장을 터지게 만들었고, 역성은 퉁명스런 말이 되어 민정을 쏘았으나 그 뿐이었다. 어쩌면 곧 조상들이 성을 낼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것이 때때로 금옥을 더없이 불안하게 했지만 그럴 때면 금옥은 주문을 외우듯 혼잣말을 했다. ‘이게 최선입니다,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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