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달
강릉 경포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전해진다.
호수에 뜨는 달, 바다에 뜨는 달, 하늘에 뜨는 달, 그리고 술잔에 깃든 달. 훗날, 님의 눈동자에 뜨는 달이 더해졌다. 검은 하늘에 달이 떠있다. 그 달이 잠긴 호수를 바라본다. 넓은 백사장에 앉아 바다의 달을 이야기하고 술에 빠져 쌉쌀해진 달을 마신다. 마지막으로 님의 눈동자, 한없이 다정한 그 달을 가슴에 새긴다.
달빛이 잔잔하게 퍼지는 경포의 밤, 누각에 오른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포호의 풍경이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많은 예인들이 작품으로 남겼다. 문장가 정철은 경포호수의 물결이 비단을 다린 것처럼 잔잔해서, 물속의 모래알까지도 헤아릴 수 있다고 묘사했다. 세조는 늘어선 송림 사이로 거니는 선남선녀의 모습이 그림 같다고 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글귀를 종이에 적어 풍경과 가닥가닥 겹쳐보며, 그 시대의 풍류를 떠올린다.
세 곱절이 되던 경포호에 조각배를 밝히는 등불이 드문드문 빛난다. 뱃머리에 앉은 나그네가 시를 읊자 나직한 음성이 물결위로 번진다. 어디선가 가야금연주가 흐른다. 코끝이 붉은 사내가 흥에 취해 나대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 풀어진 옷고름이 수면위로 나부끼고 머쓱한 듯 일어나니 물이 허리춤밖에 오지 않는다. 그 광경을 보고 혀를 차는 주막의 양반들, 그 너머 경포대에는 밤나들이를 나온 대감집 마님이 쓰개치마에서 얼굴만 쏙 내놓고는 광경을 바라본다. 얼굴마다 잔잔히 미소가 번지는 경포의 밤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