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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tic sensibility Feb 10. 2021

파랑

밭 밟는 소리

잔에 물을 부으려는데 한 남자가 들어섰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그는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털어내며 배낭과 외투, 카메라 가방까지 서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마시려던 코코아를 그에게 권하고 다시 포트에 물을 올렸다. 눈이 그칠 때까지 끊김 없는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함박눈과 기타연주, 초콜릿 향과 몰입해있는 두 사람의 잔상만이 남아있을 뿐.      


김영갑 갤러리, 뒤뜰의 작은 무인 찻집을 제주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들르는 것은, 내 마음에 심어진 사람 때문인지 모른다.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 우연히 마주치는 일도 상상해본다. 눈 덮인 채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보고 놀라는 나와, 미소짓는 우리.      









제주에는‘ 밭 밟는 소리’라는 민요가 있다. 씨앗이 날아가지 않고 땅속 깊이 자리 잡도록 밟아주며 부르는 노래. 밭에 씨앗을 심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마음에 심어지는지 모른다. 밭을 밟는 것처럼, 점점 더 깊이. 내 안에 자리하도록.  

   

그 겨울 당신에게 안부를 전한다. 

만나자는 말보다는, 잘 지내자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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