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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Jun 15. 2023

여태 뭐 했어!

A 할머니는 빌라 맨꼭대기 집에 살고 있다. 옥상과 맞닿아있어서 그런가,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집물이 새곤 한다. 옥상을 고쳐야 할 것 같지만 자식들에게 부탁하기는 좀 그렇다. 지난번 물이 샜을 때 도와줬는데 또 부탁하려니 미안했다. 그래서 빌라 관리를 맡아서 하고 있는 애기엄마에게 부탁해 봤다.

"여기 옥상에서 물이 새는데 어떻게 해야 혀? 나는 어떻게 하는지 몰러. 애기엄마가 좀 혀 줘."


그랬더니 애기엄마는,

"할머니, 모르시겠으면 구청에 연락해 보세요. 그것까지 제가 알아봐 드리기는 힘들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하하."

"아이고, 일단 알겄어."


며칠 후, 할머니는 여전히 물이 새는 집에 신경이 가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할머니는 무료로 점심을 주는 시설로 향했다.

식사를 하려는데, 마침 B 할머니를 만났다. B 할머니는 애기엄마가 아는 사람이었는데, 오며 가며 마주친 적이 있다. A 할머니는 만나자마자 봇물 터지듯이 집 얘기를 꺼냈다.

"우리 집에 물이 새서 옥상을 고쳐야 할 것 같어. 근데 애기엄마가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대. 애 키우는 게 바쁠 게 뭐가 있다고."


B 할머니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사람들이 밥을 먹으며 듣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A가 자기 가족을 '씹'고 있는 것이다. B 할머니는 말했다.

"걔가 빌라 관리해 준다고 수고비 조금이라도 받는 거 있어요?"

"그건 아니긴 한데..."

"그리고 여기 사람들 다 듣는 자리에서 얘기하면 어떡해요?"


A 할머니는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볼멘소리까지 듣게 됐다. 상황도 해결하지 못했다.

B 할머니는 그런 일이 있자마자, 애기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모든 정황을 일러주고 그때 느꼈던 감정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B 할머니는 불편한 감정을 담아두지 못한다.


애기엄마는 A와 B 할머니를 대하면서, 분노가 일었다.

그것은 순전히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도 저렇게 늙으면 어떡하지. 일이나 감정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할까 봐 무서워.'

'내가 이 할머니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처럼, 나중에 내 자식들도 나를 한심하게 여길까 봐 두려워.'


그리고 서러웠다.

내 주변 어른들은 다 왜 이래. 나보다 2배는 넘게 살았으면서, 왜 모범이 되는 어른이 되지 못한 거야. 당신들 그 많은 세월 동안 여태 뭐 했어! 어른이 젊은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왜 내가 봉양하고 살아야 하는 거지. 나는 주변에 정말 닮고 싶을 만한 어른이 없어. 왜 항상 모든 걸 나 스스로 해내야 하는 거야. 그럼 나는 어디서 보상을 받아? 나도 보호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애기들 수건에 서러움을 적시다, 이것도 결국 나만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이기심이라는 운동장 안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뛰고 있었다.

내가 하는 것들도 결국, "할머니들 관절이 안 좋으신가 봐요, 저는 잘 달리는데."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여전히 출구를 찾고 있다.


ⓒ Noah Buscher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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