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 그럼에도

by 다감

00.

꽤 오래 글을 쉬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일기가 아니라, 일종의 메시지를 가진 나름 짜인 형태의 '글' 말이다.


한 평생을 쓰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처음 블로그를 만들고 일기와 독후감을 써 올리기 시작했던 10대 시절부터, 인문학과 영화, 예술 작품을 둘러싸여서 비평을 쓰며 보냈던 이십 대 초반, 글 밥을 먹으며 살았던 이십 대 중반, 직업을 바꿨음에도 여전히 개인의 삶을 기록해왔던 이십 대 후반까지.


그러다가 이전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되던 작년, 여러 일들이 있었다. 기존에 추구하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버릴 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고, 감정을 쏟고 앓았던 시간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무덤덤하게 어쩌면 어른스럽게 그 시기를 건너온 듯했으나, 기록을 놓아버린 걸 보면 폭풍 속에 서 있는 것만으로 많이 괴로웠던 것도 같다. 흘러가는 감정을 붙잡고 들여다볼 여유도, 그 감정을 온전히 마주할 강인함도 없었던 것 같으니.



01.

뭔가 거대한 메시지나 울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한동안 세상에 드러난 내 흔적들을 지우기에 바빴던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짧은 어떤 한 마디라도 내 이야기를 어딘가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쩍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글과 관련 없이 해야 하는 것들, 해내고자 하는 목표들이 쌓여있는데 내 삶의 진도는 더디게만 흘러갔다. 멈추고, 멈추고, 멈추고... 몇 번의 공회전을 반복하고 나서야 무작정 스스로의 멱살을 잡아끄는 게 답이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 움직일 힘이, 동기가 없었다.


언제나 WHY를 찾을 수는 없다고, 우선은 나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다그쳐봐도 작년의 나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물밀듯 밀려오는 일련의 사건들을 방어하기 바빠서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이 난 상태였다. 어쩌면 스스로 더 그런 상태를 가속화시켰을지도 모르고.


마음이 오랫동안 길 잃은 채로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쓴다. 물론, 이제 나는 쓰는 사람은 아니다. '쓰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할 정도인데다, 내 인생을 움직이는 기저의 원동력은 이제 다른 가치들에서 더 많이 솟아오르니까.


그럼에도 인생의 2/3 이상을 해온 일이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로 써내는 일이었던 터라, 이번에도 날 일으켜 세우기 위해 글을 쓴다. 이렇게 뱉어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마음이 좀 개운해지더라.



02.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내 안에 당당하게 꺼내 보일 만한 어떤 빛나는 것들이 있던가?

사실 그런 건 없다. 글쓰기를 멈춘 이후로 난 사람들이 혹할만한, 부러움에 가득 찬 시선으로 날 쳐다볼 만한 여느 '사회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성장'을 막연히 추구했던 20대의 순진함은 치기 어린 안일함이 되었고, 열정이라 믿었던 내 모습들은 재바르고 약삭빠르지 못한 낙오자의 것이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화된 말로, 어떤 사람들은 사회의 기준을 들이대면서 내 20대를 평가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스스로의 자격지심이었을까?


특정한 사회적 기준에 들지 못했다는.


몇 살에는 얼마를 모으고, 특정 시점에는 집을 사야 하고, 번듯한 직장은 당연히 가지고 있으며, 얼마 이상의 연봉은 벌어야 하며, 대기업이나 전문직 같은 사회적 명함이 당연하다는 그런 논리에 스스로를 지나치게 검열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호기롭게 '그런 틀을 벗어나도 나름 행복한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모험이 (스스로 느끼기에) 실패로 돌아가서 더욱 그랬을지도.



03.


문화 예술에 대한 글을 쓰고자 했을 땐, 문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인생의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타인을 이해하는 다채로운 감정을 품을 수 있길 기대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조금 더 즐거워질 거라고, 향유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길을 떠나 창업 교육쪽에 몸 담았던 시절엔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자신만의 일을 찾도록 돕길 지향했다. 인생에서 '진로'라는 블록을 쌓아가는 과정에 한 지점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땐 사회가 정답처럼 이야기하는 대기업이나 전문직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 대한 성취는 다른 문제겠지만.



네 학벌에, 네 학점에 너는 버는 수입이 그것밖에 안되는 거냐

언제 제대로 자리를 잡을래?

남들은 N원씩 잘만 벌던데, 너는 뭐 하고 있는 거니

적어놓고 보니 화나네. 진짜로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


커리어가 꼬여서, 가장 추구했던 가치가 어그러져서, 제일 억울한 건 정작 나인데 주변에서 날 위한답시고 하는 말들이 칼이 돼서 마음을 후벼팠다. 당시에 무시하고 스쳐 지나가던 말들이 보이지 않는 한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여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격 미달'이라고 낙인찍었던 것도 같고.



04.

사실 내가 지금 어떤 걸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뻔하다.

무서우니까.


그간 해냈던 것들이 모두 엎어졌는데, 내가 노력해온 것들이 모두 다 사라진 것 같은데, 무슨 노력을 더 해야 할까 지치고 힘들어서다.


더구나 작년엔 내게 큰 영향을 끼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아득했는데, 이제껏 추구하던 커리어의 중심 가치도 잃어버려서 더욱 방황했다. 몇 년간 혼자서 바보짓만 한 기분이었다.


그때의 허탈한 심정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름대로 미련 없을 만큼 노력해서 시원하면서도 공허했다. 그간의 흔적을 다 지우고 아주 오랫동안 숨어버리고 싶었던 만큼. 그냥 흘러가는 파도 소리에 감각을 맡기고 바닷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걷기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 더 어릴 때, 일을 그저 일로 대할 수 있는 가벼움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인생이 조금은 다르게 흘러갔을까?



05.

결국 내가 주저앉아있는 이유는 마음이 지쳐서, 스스로의 현실과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한바탕 글로 감정을 풀어내니 이제야 내 마음의 바닥이 보인다.


아마 은연중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간 적은 일기를 훑어보면 사실 모를 수가 없다. 그저 그 감정을 직시하기가 어려워 부단히 외면하고 있었을 뿐.


혹은 지나갈 감정이라고 여겨 나름대로 흘려보내려 노력해 봤지만, 정답이 아니었을지도.



글 한 편으로 문제가 기적처럼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내겐 사회적 기준에, 혹은 내가 생각했을 때 마땅히 이루었어야 하는 크기의 성취가 부재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지독하게 외골수여서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다시 내 발목을 잡을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 스스로 정의하는 '성취'는 단순히 경제적 보상, 사회적 인정, 전문직/고소득 직업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나는 언제나 이야기의 힘을 믿어왔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생 이야기들, 사람에 따라 다르게 피어나는 인생의 여정에서 내 이야기가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이들에게 영감이 되길 원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그 바람은 여전하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버린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서 끈질기게 살아있었다. 짜증 나고 미련하게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걸 꽤 오래도록 원했다.이왕이면, 그 영향력이 삶의 깊은 곳에 닿아있길 바랐다.관심사가 진로나 가치관,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같은 진지한 것들이어서,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길 원했다. 몸을 담고 있는 산업을 바꾸면서, 내 성향이 상당히 많은 부분이 변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을 구성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 한다는 점에선, 여전히 한결같았다.

산업을 바꿔 이직하며 썼던 글 중


06.

그래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구체적인 계획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들을 해나가는 가장 근원적인 힘을 계획에 조금씩 녹여나가겠지. 이제껏 나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한 '자격'에 꽤 많이 집착했다. 내가 추구하는 삶과 가치는 그런 것들이 아님에도- 바다를 향해 먼 길을 돌아 흘러들어가는 시냇물처럼 사는 게 내 인생관이다- 여전히 그걸 위해 어떤 사회적 성과나 간판이 필요하다고 아주 꾸준하게 나를 몰아세웠다.


물론 전문적인 영역에서는,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준 이상의 삶을 증명하기 위해선 그런 자격들이 당연히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 '자격'을 위해 나의 인생 이야기들을 '언젠가'라는 단어 속에 한없이 가두다 보면 언젠가 한참 뒤에 우선순위가 한없이 뒤바뀌어 있는 걸 발견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입도 벙긋 못한 채로 또 다른 정답 없는 자격을 갖추려 애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지.



07.

이제는 꽁꽁 숨겼던 이전의 흔적들을 다시 조금씩 풀어내고자 한다. 이게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갈진 아직 장담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쓰고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안온한 촛불 같은, 부드러운 파도 소리 같은 안식처, 영감이 되고 싶어서이다.


일단은 이 말을 되새기는 것으로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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