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1부
바람 한점 없는 고요한 밤, 하얀 빛줄기 하나가 하늘 꼭대기에서 아래로 뻗어 나왔다.
그 빛줄기가 한 남자에게 닿았다.
별안간 빛줄기에 사로잡힌 남자는 몸을 한껏 움츠린 채 주위를 살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는 작정한 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빛줄기는 즉시 반응했다.
수직을 유지한 채 남자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따랐다.
정확히 말하면 따라갔다기보다 한 몸처럼 동시에 움직였다.
남자는 전력을 다해 골목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지름 약 1미터 남짓한 둥근 빛줄기의 경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남자 머리 위에 조명을 매달고 달리는 듯했다.
남자는 결국 돌고 돌던 골목을 빠져나와 사거리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빛줄기도 그곳에 멈췄다.
남자는 허리를 굽혀 두 팔로 무릎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손차양을 하고 빛줄기를 올려다봤다.
그때 하얀 빛줄기는 맨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순식간에 붉은빛으로 변했다.
그러자 빛줄기는 네 갈래로 갈라지며 십자모양을 그리고는 사거리 방향 그대로 이십여 미터쯤 뻗어 나갔다가 마치 남자가 끌어당기라도 한 듯 남자 서있는 곳으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그때였다.
남자의 두 발이 지면에서 붕 떠올랐다.
남자는 팔다리가 허우적댔다.
지면에서부터 5미터쯤 떠올랐을 때 조명이 꺼진 듯 빛줄기가 사라져 버렸다.
잠시 뒤, 두 차례 푸른빛 섬광이 번쩍였다.
일순간 눈앞이 하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 사이로 강한 빛이 파고들었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쨍한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머리맡에 자명종을 확인했다.
매일 아침,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와 하숙집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잠을 깼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어젯밤 지방 본가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내려가는 바람에 집엔 나 혼자였다.
믿을 거라곤 자명종시계뿐, 그런데 자명종 시곗바늘은 정확히 자정 12시를 가리킨 채 멈춰서 있었다.
나는 얼른 책상 위 손목시계를 집어 들었다.
시간은 오전 8시 35분. 아침 조회가 시작됐을 시간이었다.
난 얼굴에 대충 물을 묻히고 서둘러 교복을 갈아입고 허겁지겁 책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학교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 차오른 숨을 헐떡이며 교실 문 앞에 도착한 시간은 8시 50분이었다.
교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는데 교단에 담임 선생님은 없었다.
“오늘 담임선생님 집안에 일이 생겨서 오후에 오신대.”
맨 앞자리에 반장이 귀띔했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 옆자리에 진수가 맞잡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자리에 앉으며 진수의 손등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야 인마, 기도는 교회 가서나 해.”
진수가 고개를 들고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나도 진수를 따라 웃으며 진담반, 농담반으로 물었다.
“설마... 너도 그 휴거니 뭐니 하는 그딴 거 믿는 건 아니지?”
진수는 눈을 크게 뜨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난 곧 하늘로 올라갈 거야.”
진수의 뜻밖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진수가 교회를 나가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교회가 그딴 걸 믿는 곳인 줄은 몰랐다.
나는 진심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인마, 정신 차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진수는 듣는 듯 마는 듯 손에 고개를 묻고 중얼거렸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점심은 매점에서 육개장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아침에 정신없이 나오느라 하숙집 아주머니가 싸둔 김밥도시락을 챙겨 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짜고 매운 라면 국물이 머물다 간 입안을 바나나우유로 달래고 매점을 빠져나와 교실로 향했다.
교실 복도에 들어서자 저 멀리 우리 반 교실 앞에 몇몇 아이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난 무리를 헤치고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교실엔 낯선 세 녀석이 진수 자리 앞에 둘러싸고 있었다.
진수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순간, 가운데 선 덩치 큰 놈이 그것을 잽싸게 낚아챘다.
진수가 내게 자랑했던 워크맨이었다.
“그... 그거… 이리 줘.”
진수는 더듬더듬 말했다.
“새꺄, 이게 언제부터 네 거였어?”
워크맨을 낚아챈 덩치가 뻔뻔하게 말했다.
“빌려갔으면 재깍재깍 갖다 줄 것이지 내가 꼭 받으러 와야겠냐?”
“.... 그러지 말고 이리 줘.”
그러자 덩치가 때릴 듯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진수가 몸을 움츠리자 덩치는 진수의 뺨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진수야. 어제 네가 나한테 사정사정해 가며 빌려갔잖아. 기억 안 나?”
"내게 언제... 너한테... 빌렸다고 그래..."
진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새끼 봐라. 사정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오리발이네.”
“이거 사촌형이 생일선물로 사준거란 말이야…”
그러자, 덩치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이 새끼가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
진수는 겁을 먹고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이거 내가 당장 필요하거든. 한 달 있다가 내가 다시 빌려줄게 그럼 됐지?”
덩치가 마치 워크맨이 자기 것인 양 큰 선심 쓰는 듯 말했다.
옆에 서 있는 두 녀석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세 녀석들은 볼일을 다 봤다는 듯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나는 녀석들을 불러 세웠다.
“야 그거, 진수한테 돌려줘.”
내 목소리에 녀석들은 일제히 뒤돌아서 나를 보고는 웃음기를 걷어내고 위아래로 훑었다.
덩치가 성질을 부리며 말했다.
“넌 뭐야, 새끼야?”
나는 대답대신 덩치 손에 들려 있는 워크맨을 낙야채 진수 손에 쥐여주었다.
덩치가 곧장 나를 밀쳤지만 난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텨 섰다.
교실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
덩치 옆에 있던 녀석이 시계를 손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까닥하더니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시간을 보니 곧 수업 시작 5분 전이었다.
덩치가 분한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
“새끼,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그리고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오영아, 고마워.”
진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간수해. 또 뺏기지 말고.”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새끼들, 그냥 넘어갈 놈들이 아니야. 괜히 나 때문에...”
“걱정 마.”
나는 진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방금 행패를 부렸던 그 놈들은 진수의 중학교 동창들로 중학교 때도 애들을 괴롭혔던 일진 무리였다고 했다.
5교시 후 쉬는 시간에 녀석 중 한 녀석이 날 찾아왔다.
진수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난 6교시 수업 종이 울리자마자 그 녀석들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소각장 뒤로 향했다.
녀석들은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덩치가 나를 보자마자 가래침을 뱉고는 거드름 피우며 말했다.
"새끼, 너 내가 누군지는 알기나 해?"
"알지. 양아치 새끼."
나는 비꼬듯이 답했다.
녀석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교내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건축과 1학년 2반 유오영. 건축과 1학년 2반 유오영.』
순간 멈칫했다.
내 이름이 왜 방송에? 의문이 스치기도 전에, 덩치가 먼저 움직였다.
『건축과 1학년 2반 유오영은 이 방송을 듣는 즉시 교무실로 와라.』
그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혔다.
녀석의 주먹은 내 귀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난 오른 주먹을 아래서부터 끌어올렸다.
퍽! 주먹이 복부에 정통으로 꽂혔다.
“헉”
그 녀석이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배를 움켜잡고 그대로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옆에 서 있던 두 녀석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그중 한 녀석이 달려와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재빨리 주먹을 피하고 오른팔로 녀석의 가슴을 힘껏 밀어 올렸다.
녀석도 힘없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걸 지켜보던 한 녀석도 덤벼들 듯 몸을 움찔했지만 내 눈과 마주치자 주춤하더니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덩치에게 가서 부축했다.
나를 찾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건축과 1학년 2반 유오영은 이 방송을 듣는 즉시 교무실로 와라.』
덩치를 부축하던 녀석이 나를 알기라도 하듯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야, 이번엔 진짜 잘리는 거 아냐?"
여전히 복부를 감싸 안고 주저앉아 있는 덩치의 얼굴에선 방금 전 오만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새끼,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덩치가 내게 했던 말을 되돌려주고는 서둘러 교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겁게 느껴졌다.
그동안 몇 차례 싸움 문제로 가벼운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
나중에야 정당방위로 소명돼 징계가 풀리긴 했지만, 선생님들 사이에서 평판은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본관에 들어서자 교무실 앞에 서성이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좋은 일로 나를 찾은 것은 아닌 듯했다.
나를 발견한 담임이 내게 황급히 다가와 말했다.
“유오영, 니... 아버지 말이다. 엊그제 밤에 실종되셨단다.”
순간, 주변 소리가 다 꺼진 듯했다.
뭔가 턱 하고 숨이 막혔다.
아버지의 실종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난 곧장 터미널로 향했다.
막 출발하려는 서안행 버스에 올라탔다.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