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1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버스는 바로 출발했다.
빈 좌석은 뒤에서 두 번째 열 좌석뿐이었다.
난 흔들리는 버스를 움켜잡고 쪽창문이 달린 창가자리에 앉았다.
평소였다면, 좌석에 앉아마자 잠이 쏟아졌겠지만, 지금 상황은 태평하게 잠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버스가 출반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아래에서 거친 소리를 내며 엔진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진동은 고스란히 내 좌석을 타고 몸에 스며들었다.
게다가 바닥에선 기름이 연소되면서 매캐한 배기가스 냄새가 올라왔고 여기저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와 김밥, 삶은 계란, 김치등 각종음식냄새와 향수냄새까지 뒤엉켰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난 억지로 트림을 뱉어봤지만 속은 그리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있다간 멀미가 오겠다 싶어 얼른 쪽창문을 열었다.
일순간에 차가운 바깥바람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 밀고 숨을 길게 내뱉고 입을 크게 벌려 바깥바람을 양껏 들이마셨다.
숨을 길게 내쉬고 크게 들이마시기를 몇 번 반복하자 두통과 메스꺼움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한숨 돌리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버지는 어떡하다가 실종이 된 걸까? 그럼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안전하게 잘 있을까? 혹시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어떡하지? 나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하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머릿속은 불안이 무한반복 굴러가는 쳇바퀴 같았다.
두 시간쯤 지나 버스는 서안터미널에 도착했다.
승강장에 이장 아저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장아저씨에게 달려가 물었다.
“아버지가 실종됐다니…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
이장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게 말이다… 그제 밤에 네 아버지가 빛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어."
"빛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이장 아저씨는 가는 내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경찰서에서 실종신고서를 작성하고 신고절차를 밟았다.
아버지의 인적사항과 실종 당일 장소와 옷차림, 소지품, 인상착의... 경찰이 묻는 대로 답했다.
경찰이 타자기 자판을 두드리다 이장 아저씨를 향해 말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이장 아저씨는 천천히 입을 뗐다.
그날 밤 여덟 시쯤이었어.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오영 아버지를 만났지.
막차를 타고 마을회관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오영 아버지가 소주 한잔하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마을회관 옆 점빵에 들러서 마른오징어에 소주 서너 병 시켜 마셨어.
근데 내가 변소에 다녀온 사이에 오영 아버지가 술값을 계산하고 먼저 나갔더라고.
점빵 밖으로 나가보니 신작로 사거리에 서 있더라고, 그런데.... 웬걸, 빛줄기가 오영 아버지를 감싸고 있었어.
난 놀라서 뭔가 하고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어디서부터 시작된 빛인지는 알 수가 없더라고.
아주 높은 곳에 내려온 빛이었다는 것 밖에는.
근데 오영 아버지가 살짝 떠오른 것 같았는데, 그러다 갑자기 번쩍번쩍 빛이 두 번 섬광이 터지더니… 빛줄기가 싹 사라졌어.
눈이 부셔 한동안 아무것도 못 봤지.
한 삼십 초? 일분? 대략 그쯤 지나 눈을 떴는데, 오영 아버지가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난 얼른 사거리로 달려가봤는데 오영 아버지는 아무 데도 없더라고.
허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난 오영 아버지 이름을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그 길로 곧장 집에 달려가 마을방송을 켜고 사람들을 사거리로 불러내서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
그런데 오영 아버지를 찾지 못했어.
땅으로 꺼진 건지, 하늘로 솟은 건지... 당최 찾을 길이 없더라고.
그래서 다음날 당장 신고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혹시 다음날 돌아오지 모르니 하루만 기다려보자고 했지.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야.
그래서 오늘에서야 오영이 학교에 연락한 거고.
난 아버지에게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게 거짓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상황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불현듯, 지난밤 꿈 장면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나타난 빛줄기. 그 빛에 허공으로 끌려가는 남자.
그 꿈속 장면과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설마… 그건 그냥 꿈이었는데... 등줄기로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경찰은 자판을 치다 말고 믿기지 않다는 듯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그리고 경찰은 멈췄던 자판을 두드리면서 물었다.
“한 밤중에 빛줄기라..... 거 참 특이하네요. 그럼, 하늘에 뭐 물체가 떠 있거나 그런 건 없었나요?”
“아까 말했듯이 하늘에 아무것도 없었어. 하얀 빛줄기밖엔.”
“혹시, 술기운에 잘못 보신 건 아니고요?”
“아녀. 내가 똑바로 봤다니까. 나도 혹여 비행접시라도 떠 있나 싶어서 기억을 더듬어봤지. 그런 거 분명 없었어."
경찰은 멋쩍게 웃고는 말을 돌렸다.
"점빵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기억나세요?"
"기억하지. 그럼. 그날은 좀 이상했어."
이장아저씨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서 이어 말했다.
점빵에서 둘이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아마 열한 시 좀 넘어 소주 넉 병째였을 거야.
그날따라 좀 이상했어. 평소랑 다르게, 허공에 대고 말하듯 엉뚱한 소릴 하더라고.
그때 오영이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더군.
“자네 혹시… 우리 땅 살 만한 사람 없어?”
처음엔 땅을 팔겠다는 말에 농담인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물었지.
“갑자기 땅은 왜?”
“도시로 나가서 살아볼까 해서.” 하더라고. 허허, 내가 그 말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송충이는 솔잎 먹고살아야지, 무슨 도시 타령이냐”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더라고.
“촌놈은 도시서 살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나?” 그러는데... 그때부터 뭔가 좀 이상했지.
그리고 말없이 소주를 꿀꺽 넘기더니, 잔 내려놓고 허허 웃더라고.
그리고 이런 말을 했어.
“어차피 가져가지도 못할 땅인데… 뭘.”
그 말 듣고 나는 순간 멈칫했어.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지. 그래서 난 말했어.
“땅은 자네 아들한테 물려줘야지. 그게 순리 아니여?”라고 그랬더니 또 이상한 소리를 하지 뭐야.
“물려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얼마 안 있으면 하늘로 올라가면 그만인걸.”
그 순간, 나는 정말 깜짝 놀랐어. 오영 아버지가 어디 죽을병이라고 걸린 줄 알고 말이야.
“혹시 자네, 어디 큰 병이라도 걸린 거야?”라고 내가 진지하게 물으니까, 고개를 젓더라고.
“병은 무슨…”
그래서 병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은 했지만 좀 찜찜하긴 했지.
“그럼 다행이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소리를 허니까 무슨 말인가 싶었지.” 그랬더니 웃으면서 그러더라고.
“내가 죽어서 하늘로 올라갈 거면 그런 소리 할 이유가 없지.”
난 그 말 듣고는 진짜 뭔 소릴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
“그게 또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여?” 하고 내가 쏘아붙였지.
그러니까 또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머지않아 하늘 문이 열리는 걸 보게 될 거야.” 이러는데…
그쯤 되니까 이 양반이 정말 술에 취했구먼 싶더라고.
그런데 이후 눈빛이 좀 이상하더라고 어디에 미친 사람처럼.
내가 술기운에 봐서 그렇게 봤을 수도 있는데 술에 취한 눈빛은 아니었어.
정말이지 그날 밤, 오영 아버지는 완전히 딴사람 같았어.
좀 당황스럽더라고.
“이 사람이 벌써 취했나. 도대체 무슨 소리여 그게?” 태연한 척 내가 물었지.
“자넨 세상 진리를 몰라서 그래” 이러는데… 이건 또 뭔 소린가 했지.
“진리는 무슨 진리?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게 진리지” 내가 그랬더니.
“답답한 소리하고 자빠졌네. 안되겠구먼. 진짜 진리가 뭔지 한 번 들어볼 텨?” 그러길래.
"됐네. 이 사람아. 머리 아픈 거 딱 질색여 난." 내가 손사래를 쳤지.
“그런 게 진리면 내가 말을 안 하지 이 사람아. 그게 말여….”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헛소리 좀 작작하라고 했지.
오영 아버지는 할 말이 더 있어 보였는데, 내 눈치를 보더니 거기서 말을 멈추더군.
이장은 마지막에 한숨을 쉬었다.
“그때 더 들어봤어야 했는데… 그게 두고두고 후회가 돼.
점빵을 먼저 나가게 하질 말았어야 했는데...”
경찰은 내게 물었다.
"오영 학생, 아버지한테 재산 처분에 대해 들은 적 있니?"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땅을 판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설령 그런 생각이 있었다 해도, 고등학생인 나에게 상의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장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니, 아버지가 여전히 종말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것 같았다.
처음 ‘휴거’라는 단어를 아버지 입에서 들은 건 작년 이맘때였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 1시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 방으로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세탁바구니에 외출복을 던져 넣었다.
아버지는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난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물을 따랐다.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아버지가 불쑥 물었다.
“오영아, 휴거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니?”
아버지의 뜻밖의 질문이었다.
난 반쯤 남은 물컵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종교 같은 것에 일절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성탄절이나 석가탄신일은 그저 빨간 날일 뿐이었고, 그 흔한 여름성경학교에 날 보낸 적도 없었다.
함께 절에 간 기억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단지 학교 소풍장소였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그 정도로 종교를 멀리하는 사람, 아니 거의 회의론자에 가까웠다.
그런 아버지의 입에서 '휴거'라는 단어가 나왔다.
얼마 전부터 서재에 기독교 관련 서적이 늘어가는 걸 알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나는 무심한 척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 손에 들린 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그 책은 몇 년 전 한 목사가 출간한 것으로, 예수 공중재림과 휴거를 구체적으로 주장한 책이었다.
십여 년 전 미국의 한 목사가 쓴 예수재림을 다룬 소설*을 차용해 쓴 내용에 불과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게도 세기말 분위기와 맞물려 그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휴거요? 에이... 그건 말도 안 되잖아요.”
나는 피식 웃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세상에 일어나겠어요.”
“혹시 모르지. 세상엔 과학으로 설명 못 하는 일도 많아.”
아버지는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렇다 해도 제 상식으론 불가능 해요.”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상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 옛날엔 하늘을 난다는 것도 상식 밖이었어. 지금은 비행기도 있고, 로켓으로 우주에도 가는 시대잖니.”
“비행기는 엔진이라도 있잖아요. 근데 장치 없이, 사람이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요.”
아버지는 뭔가 더 말하려다 말고, 들고 있던 책을 펼쳤다.
책갈피를 꺼내 손가락으로 문장을 짚고 읽었다.
“예수께서 공중재림하실 때, 그분을 믿었던 자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려져 주를 맞이하게 된다.”
목소리에 확신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눈으로 따라 읽다가 코웃음을 쳤다.
“예수가 재림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산 사람이 하늘로 올라간다 건 더 말이 안 되잖아요.”
내 말에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늘에는 죽은 사람만 올라가는 거잖아요. 엄마처럼요.”
아버지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
아버지는 나를 노려보듯 바라보더니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 문이 닫히고 적막이 내려앉았다.
나는 식탁 위에 놓인 물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컵 표면의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방금 내가 던진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건 설득이 아닌 상처였다.
서재 문 너머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곧 후회가 밀려왔다.
-주석-
*소설『랩처드』(Raptured: ‘황홀한, 환희의’), 1978년 출간. 어니스트 앵그리 지음.
국내에는 1981년『휴거』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 서병익 번역.
휴거(携:이끌 휴, 擧:들 거)는 한자어로 '들어 올림'을 뜻한다.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