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승자는?

뜻밖의 물물교환

by 빛나다온

방학이 되면 학교는 고요해지지만 아침의 돌봄 교실은 오히려 더 활기차다. 급식이 없어 아이들 가방은 도시락 때문에 묵직하다. 그 안엔 학부모님들의 아침 전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내 도시락을 챙긴다.


안전을 위해 "컵라면은 가급적 가져오지 말자"라고 당부한다. 뜨거운 물에 다칠까 걱정돼서다. 하지만 늘 예외는 있다. 단이가 가방에서 조심스레 컵라면 하나를 꺼낸다.


"선생님, 엄마가 오늘 바쁘셔서요."
"그~럼 그~럼. 어머님 출근하시려면 얼마나 바쁘시겠어. 괜찮아. 물은 선생님이 부어줄게. 먹을 땐 조심해야 해."

순간, 교실의 공기가 바뀐다. 주변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와~ 라면이네?"
"컵라면이다!"
"부럽다아~"


부러움과 갈망이 섞인 시선이 단이의 책상으로 쏠렸다. 온수를 붓고 라면이 익는 동안 나는 컵라면을 지켰다. 뚜껑 사이로 김이 새어 나오고 수프와 뜨거운 물이 만나 치명적이고 구수한 향이 교실을 점령했다.

"와... 라면 냄새 대박이다."

아이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컵라면을 힐끔거렸다. 각자의 도시락엔 돈가스, 멸치볶음, 김밥, 계란말이, 과일 등 엄마의 사랑이 가득했지만 아이들을 사로잡은 건 오직 하나.


라. 면.


결국 은밀한 협상이 시작됐다.

"단이야, 나 김밥 하나 줄게. 라면 한 젓가락만."
"돈가스랑 바꾸자. 국물 조금만 응? 응?"
"난 계란말이 줄게. 두 줄만, 딱 두 줄만!"(두 줄이란 표현이 귀엽다.)


단이의 책상은 순식간에 핫플레이스이자 최고의 물류 거점이 되었다. 귀한 라면 한 젓가락을 얻기 위해 아이들은 가장 아끼는 반찬 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먹던 젓가락은 안 돼요. 단이가 준다고 하면 새 젓가락으로 조금만."

어느새 단이의 컵라면 뚜껑 위엔 김밥, 계란말이, 유부초밥이 차곡차곡 쌓였다. 내가 접시를 가져다주자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선생님, 컵라면 뚜껑에 먹어야 더 맛있어요."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은 라면 한 젓가락의 위엄. 서로의 반찬을 나누고, 귀하게 얻은 면발을 소중히 받아 가는 아이들을 보니 라면의 인기는 자극적인 맛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함께 나누기에 더 맛있어지는 어쩌면 '치명적인 한국인의 정서'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 때문일까?

"라면이 그렇게 맛있어?"
"네~~~에"

아이들의 간절한 합창에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럼 1월에 한 번, 2월에 한 번, 컵라면 가져와도 됩니다."


"앗싸! 난 짜장라면!"
"난 사골곰탕면!"
"난 너구리"


그때 예진이가 말했다.
"전 진순이 싸 올 거예요."
"진순이? 그게 뭐야?"
"진라면 순한 맛요."
"아~ 그 진순?"
"선생님은 모를 수도 있죠. 어른들은 매운 거 좋아하시잖아요."


역시 예진이다. 교실은 금세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점심시간은 라면 향기만큼이나 구수하게 흘러갔다. 내일은 나도 컵라면 하나 챙겨 와야겠다.



#돌봄 교실

#컵라면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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