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매 식당
방학 중 돌봄 교실은 오전부터 바쁘다. 돌봄 교실 프로그램 수강과 문제집까지 풀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독서까지 마치면 아이들의 에너지가 슬슬 가라앉을 법도 한데 자유 놀이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 교실은 생동감 넘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중에서도 최고 인기는 단연 여학생들이 운영하는 '4자매 식당'이다. 나는 이 식당의 유일한 단골이자 가장 까다롭지 않은 VVIP 손님이다. 신기한 건 4자매 식당은 매일 간판이 바뀐다. 그저께는 클래식한 음악(아이들이 흥얼거리는 멜로디)이 흐르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우아하게 플라스틱 나이프를 들고 갓 담아낸 스테이크(종이로 접은)를 썰었다.
어제는 국밥집이라 메뉴는 구수했다. "손님,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라는 사장님의 경고와 함께 배달된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국밥 한 그릇. 빈 그릇이지만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 덕분에 나는 뚝배기 바닥을 긁는 시늉까지 하며 '꺼억' 배부른 소리를 냈다.
오늘은 분식집 오픈 날이다. 매콤 달콤한 떡볶이와 속이 꽉 찬 김밥이 내 앞에 놓였다. "손님, 이건 서비스예요"라며 건네주는 색종이 튀김 하나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포만감을 느꼈다.
"그런데 사장님 음식값은 받으셔야죠?"
아이들은 나에게 종이를 주더니 "손님 여기에 손님 생일을 적어주세요."
"생일은 왜요?"
"음식값이랑 교환하는 거예요."
난 생일을 적어주며 "생일이랑 음식값은 비교가 안되는데요?"
"선생님 생일은 개인정보니깐 음식값보다 비싼 거예요."
"허~~~ 얼"(정말 깜짝 놀람)
1, 2학년이 같이 있다 보니 새 학기에는 2학년들은 3학년이 되어 돌봄 교실을 떠난다.
"3학년이 되어도 선생님 생일상 차려주러 와도 되요?"
"그럼 당연하지... 안 오기만 해 봐라."
"매일 놀러 올 거예요. 흑흑"(갑자기 슬퍼짐)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금방 소화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방전된 배터리처럼 기운이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즐겁게 차려주는 이 '0칼로리 식단'은 신기하게도 즉각적인 에너지를 공급한다. 색종이로 접은 스테이크에는 아이들의 다정함이 담겨 있고 빈 그릇에 담긴 순댓국에는 나를 챙기려는 기특한 마음이 녹아 있다. 나는 이 식당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영양실조는 커녕 비만이 된다.
"내일은 무슨 식당 할 거야?"
슬쩍 물어보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비장의 메뉴를 준비하는 눈치다. 초밥집일까? 아니면 피자가게일까? 아이들의 상상력이 요리되고 웃음소리가 양념이 되는 한 내일도 기꺼이 그들의 단골손님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 예전에는 상투적인 비유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 자식을 키워보고 또 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의 식당에서 가상의 성찬을 즐기다 보니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 것 같다.
물질적인 음식은 위장을 채우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요리는 마음의 허기를 채운다. 매일 퇴근길엔 입가에 미소를 띤다. 내일은 또 어떤 근사한 요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