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식물들과 함께 살았다.
식물이 담겨 있는 화분을 산 적도 있고 빈 화분과 씨앗을 사 심기도 했다.
자소엽
고수
제라늄
감
사과
여러 종의 다육이들
그리고 그밖의 식물들
그들은 이제 내 곁에 없다.
모두들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
내가 한 짓이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던 날들의 끝에는 늘 '식물'보다는 '불쏘시개'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메마른 그들이 있었다.
현장 파견에서 돌아오는 날도 그랬다.
벌써 몇 번째, 살림살이라기에도 민망한 짐을 새로운(그렇지만 내 것은 아닌) 보금자리에 부리고 나면
그들은 삶의 의지를 쉬이 잃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틈만 나면 새 식구를 들였다.
이쯤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포기하는 편이 모두를 위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지금 다시 나는 새 식구를 맞았다.
단풍
사과
아보카도
여러 종의 다육이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새벽부터 자정이 될 때까지 일에 파묻혀 있더라도 함께 사는 식물 한번 돌아보지 못할 만큼 나를 잃을 일은 없다.
오랜 기간 집을 비우지도 않고
이방인처럼 떠돌 필요도 없다.
그러니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