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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식물 02. 아보카도


이름: 아보카도

품종: 아보카도

나이: 1세(2024년 6월 기준)



사과 씨앗을 싹 틔웠다는 사실에 고무된 나는

사과 씨앗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딱딱한 아보카도 씨앗을 보고 도전 정신이 불타올랐다.

  

‘싹 틔워 보자’


두 씨앗의 다른 외양만큼이나 싹 틔우는 방법 역시 다르다.

사과는 촉촉한 키친타월로 덮어두면 며칠 만에 싹이 고개를 내밀지만

아보카도는 아예 물에 담가 두어야 하고 더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노랗던 씨앗은 시간이 지나면서 멍이 들어갔다

 

씨앗을 물에 담근 채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씨앗이 든 용기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채워 주는 것뿐이었다.

어떤 날은 씨앗이 벌어진 것 같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도대체 싹이 트기는 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두 달, 드디어 쩍 하고 단단한 껍질이 갈라지더니 싹이 올라왔다.

4월이었다.


갈라진 아보카도 씨앗을 냉큼 화분에 심었다.


싹튼 씨앗을 서둘러 화분에 심고 베란다에 내었다.

그러자 아보카도는 기다렸다는 듯 자라기 시작했다.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화분만 지켜보고 있었다면

하늘을 향해 줄기가 뻗어 올라가고 잎이 벌어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맹렬한 속도였다.

하지만 며칠 사이 30cm까지 내리 자라던 아보카도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게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겨울이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애초에 열대 식물인 아보카도를 겨우내 베란다에서 지내게 할 수는 없었기에

집안으로 들였다.

낮이면 뜨겁게 달아오르고 밤이면 차갑게 식던 가을의 베란다 공기 대신

낮이고 밤이고 항상 같은 온도로 유지되는 실내 공기가

열대 식물의 식생에는 더 좋았던 모양인지

집안에 들어와 적응을 마친 아보카도는 다시 성장을 시작했다.

겨울 꼬박 10cm가 자랐다.

반년을 웅크리고만 있던 ‘ 드디어 잎이 되어 펼쳐졌다.


움으로만 꼬박 6개월을 났다.

이번에도 속도는 빨랐다.

들여다볼 때마다 잎은 손바닥 길이만큼 자랐고 다시 움을 내밀었다.

그러다 보니 금방 화분이 작아졌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5cm 남짓의 화분이었기에 처음부터 분갈이는 각오하던 일이었다.


"분갈이를 하라"


그리고 바로 어제, 조금 더 넓고 안락한 화분으로 옮겨 주었다.

미천한 지식은 부딪히며 채워 나가겠다는 집사의 첫 분갈이여서인지

과정도 어설펐고 다 하고 보니 줄기도 비스듬하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실수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더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지만

늘 조급증에 시달리던 나에게

인내의 가치를 알려준 씨앗 시절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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