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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노는 게 제일 좋지만

by narara

얼마 전 경제적 자유에 성공해서 과감하게 명퇴를 신청한 동기에 대해 들었다. 로또도 코인도 아니고 미국주식으로 이뤄낸 결과라고 한다. 내가 물타기가 불가한 국장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기 꽤 오래전부터 이 친구는 미국 S&P 500과 나스닥 100, 특히 메그니피센트 7에 계속 투자해 왔고 덕분에 최근 몇 년간 미친 듯이 오른 미장의 은총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이 들리면 우리 같이 국장에 발목 잡혀 있는 한심한 부류의 족속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로또나 코인으로 10억 벌면 회사 계속 다닐 거야?(이런 부류의 또 하나의 특징은 로또를 사지도 코인 투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거)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당장 회사 그만둬야지! 자금운영계획도 다 세워놓았다고! 돈이 없어서 못 노는 거뿐이지 돈만 있으면 재미있게 의미 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이러다가 아주 가끔 회사생활에 기쁜 순간이 찾아오면 역시 사람은 일을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 조기은퇴 망상을 살짝 내려놓기도 한다. 지난주에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준비하느라 설 전부터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느라 제법 스트레스도 받았었는데 당일 행사가 성황리에 잘 끝나고 중요한 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듣고 나니 그 성취감이 어디 비싼 휴양지에서 노는 거만큼이나 큰 즐거움을 준다. 힘든 하루 끝에 서로를 칭찬하며 고기 한 점에 소주 한잔 쫙 찌끄리면 또 직장인에게 그만한 재미도 없다.


물론 성취감의 순간은 짧고 그 순간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시간은 길고 길다. 준비가 완벽했다고 해서 늘 뜻대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준비의 시간, 성취의 순간 또는 실패의 아픔이 쌓이고 모여서 더 단단한 나를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조기은퇴의 꿈이 망상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하루하루 묵묵히 앞으로 나가다 보면 난 더 단단해질 것이고 단단해야 은퇴해서 노는 것도 더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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