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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어서 재미있는

by narara

영상에 따라 보는 자세가 따로 있다. 자세에 따라 보는 영상이 따로 있는 것인가? 뭐가 선후인지 모르겠으나 하루 중 다양한 시간대별 다양한 영상을 보고 있는데 짧은 이동수단에서는 서있는 자세로 주로 숏폼을, 1시간 이상 지속되는 긴 이동수단에서는 좌석에 앉아서 20~30분 이상의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영상을 본다. 집에 있는 시간에는 소파에 눕거나 침대에 엎드려서 OTT 시리즈물을 보기도 한다.


그중 나의 최애 자세 및 영상은 누워서 자기 전에 보는 솔로 캠핑영상이다. 솔로캠핑이다 보니 대부분 말이 없고 장소에 도착해서 텐트 피칭 같은 세팅장면으로 시작해서 저녁 준비와 먹방으로 이어지다가 잠을 자고 그다음 날 아침을 먹고 장비를 철수해서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재미가 1도 없을 것 같지만 바로 그 재미없는 것이 재미의 포인트다. 자기 전에 보는 영상이니 만큼 뇌의 각성을 막기 위해 재미없는 것이 미덕인데, 가끔 너무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해 먹는 것을 볼 때면 위가 각성되어 버리는 부작용이 있기는 하다. 잘 때는 모든 빛을 차단해야지 뇌가 수면모드로 들어갈 수 있다는데 캠핑영상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방구석에 누워서 캠핑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캠핑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생기게 됐다. 실제로 최소의 장비만으로도 캠핑이 가능한 봄과 가을에 솔로캠핑을 해봤는데 딱 내 취향이다. 도착하면 텐트를 5분 만에 피칭하고 캠핑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책을 본다. 5시쯤 되면 이른 불을 피워서 바비큐를 준비한다. 술 한잔 곁들여서 돼지목살구이와 라면까지 먹고 나면 그때부터는 불멍타임이다. 멍도 때리다가 영상도 보다가 불이 다 꺼지면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에는 밥은 안 해 먹어도 드립커피는 꼭 마신다. 참 재미없는 시간인데 그래서 참 재미있다.


아직까지 목을 움츠리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이지만 그 속에서도 봄의 기운이 살짝 느껴진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완전한 주인이 되면 또 최소한의 장비를 가지고 솔로캠핑을 갈 것이다. 그전까지는 재미없어서 재미있는 영상들이 나를 위로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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